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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2년 시한'과 부실한 3심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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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연초부터 노무현 대통령 정권이 어이없는 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이기준 교육부총리의 낙마(落馬)로 인사 시스템이 화살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을유년의 인사파동이다. 이는 먼저 노 대통령 자신의 문제다. 그리고 참여정부가 자랑하던 인사제도의 부실 때문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의 책임은 만사(萬事)라 불리는 인사에 대해 너무나 가벼운 철학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지난 4일 개각하면서 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2년쯤 일하면 아이디어도 써먹을 만큼 써먹고 열정도 조금 식고 경우에 따라서는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나는 2년 정도를 알맞은 장관 임기로 생각한다." 대통령으로서는 2년 가까이 재임한 몇몇 장관을 바꾸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나 이는 문제가 많은 발언이다.

우선 대통령의 언급으로 대한민국 장관의 수명은 한순간에 2년이 되어버렸다. 헌법이나 법률에도 없는 시한이 정해져 버린 것이다. 앞으로 대통령의 인사권은 스스로 제약을 받게 되었다.

대통령의 말은 논리나 역사적 사례에도 맞지 않다. 노 대통령은 누구보다 논리를 중시하는 판사.변호사 출신인데도 내각의 내구성(耐久性)이란 중요한 문제에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동원했다.

노 대통령이 말한 아이디어.열정.매너리즘은 사람이나 환경에 달린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엔 장수 장관이 많았다. 최장수였던 최형섭 과기처 장관은 7년6개월간 자리를 지켰다. 남덕우씨는 5년간의 재무부 장관을 거쳐 4년3개월간 경제부총리를 지냈다. 박동진 외무부 장관은 4년10개월, 김치열 내무부 장관은 3년, 서종철 국방부 장관은 4년, 민관식 문교부 장관은 3년3개월, 장예준 상공부 장관은 4년, 신현확 보사부 장관은 3년, 김성진 문공부 장관은 4년, 이용희 국토통일원 장관은 3년간 봉직했다.

노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이들은 아이디어도 고갈되고 열정도 식었으며 적당히 매너리즘에 빠진 상태에서 1~5년간을 더 장관의 자리에 앉아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대한민국은 이 시절에 이런 내각을 가지고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세상이 바뀌어 이후 정권에서 장관들이 단명의 시대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상당 부분 정치적인 고려로 감투를 주었다가 엔진오일 바꾸듯 장관을 바꾼 통치권자들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아이디어나 열정 하고는 상관이 없었다. 능력있는 사람이 제자리에 가면 열정은 식지 않는 법이다.

아이디어.열정의 수명이 2년이라 치자. 왜 그 수명은 장관에게만 적용되는가. 대통령 자신은 임기가 5년이고 국회의원은 4년이며 국영기업체장은 3년이다. 이들은 장관과는 다른 별종의 사람들인가.

다른 대륙을 보아도 '2년 시한'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미국의 장관들은 대통령의 정중하고 애정 어린 소개를 통해 국민 앞에 등장한다. 대통령은 장관을 임명하면서 기자회견에서 껴안고 어깨를 두드린다. 그렇게 임명된 장관들은 시한 걱정 없이 일한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4년을 일했으며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4년을 넘길 참이다. 이들이 아이디어가 고갈됐으며 열정이 식었고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또 다른 문제는 시스템의 부실이다. 청와대 인사수석실은 참여정부가 자랑하는 발명품이다. 노 대통령은 정찬용 인사수석에게 "인사는 인사수석실이 1심, 민정수석실이 2심, 그리고 대통령이 3심"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기준 교육부총리 소동은 1심.2심.3심이 차례차례 구멍이 뚫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노 대통령은 2005년을 의외로 어렵게 출발하고 있다.

김 진 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