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타'美 브로드웨이 진출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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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넌버벌(비언어) 퍼포먼스 '난타'가 국내 공연사상 최초로 세계 상업예술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진출한다.

이번 건은 '명성황후'등과는 달리 현지 제작자의 직접 초청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첫 브로드웨이 진출로 간주된다.

제작사인 PMC 프로덕션의 송승환 대표는 12일 "'난타'가 2004년 3월 22일부터 4월 25일까지 브로드웨이 42번가에 있는 '뉴 빅토리 극장'에서 5주간 공연한다"고 밝혔다.'난타'는 영문 제목인 '쿠킨(Cookin)'으로 선을 보인다. 뉴 빅토리 극장은 4백99석의 중극장으로 주로 가족극을 공연하는 곳이다.

1997년 뮤지컬 '명성황후'가 브로드웨이 선상에 있는 링컨센터에서 공연한 바 있으나, 일반적으로 상업예술의 중심지를 뜻하는 브로드웨이 진출로 보기는 어려웠다.

송대표는 "지난 7월 한국을 방문한 뉴 빅토리 극장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마리 로즈 로이드가 '난타'를 본 뒤 공연 유치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성사됐다"며 "로열티와 스태프의 동원 등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계속 협상 중"이라고 밝혔다. 일단 5주 공연 뒤 그 결과에 따라 장기 상설 공연의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난타'의 브로드웨이 진출은 한국 공연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이른바 '문화산업'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마땅한 실천 전략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난타'가 이 분야의 좋은 모델이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는 진작부터 예상돼 왔다. 99년과 2000년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거푸 참가하면서 가능성이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이때 미국 브로드웨이 시장에 영향력이 있는 뉴욕의 제작·배급사인 '브로드웨이 아시아'가 이 작품에 눈독을 들였고, 그 유통망을 통해 지난해 4백만달러라는 비싼 값에 미국 시장에 팔 수 있었다.

이번 브로드웨이 진출은 그런 연장선상에서 거둔 성과다. 지난해 불행하게도 미국 순회공연 초반기에 9·11 테러 참사가 일어나 남은 일정이 취소되는 사태가 일어났지만, 이번 '큰 건'으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게 됐다.

97년 호암아트홀에서 초연한 '난타'는 식당 요리사들이 펼치는 에피소드와 사물놀이의 리듬을 결합한 타악 퍼포먼스로 '상품화한 예술'의 대표격이었다.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1백26만명이 '난타'를 관람했으며,순이익이 80억원에 이른다.

정재왈 기자

<상설공연 여부 관심>

'난타'의 2년 뒤 브로드웨이 초연은 성공 여부에 따라 이곳에서 상설 공연을 할 수 있을지 여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사실 '난타'류의 타악 퍼포먼스는 수명이 짧은 게 단점이다. 97년 국내에서 초연돼 5년 정도 지났으니 이제 '유효기간'이 거의 다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계약은 '난타'가 아직도 세계 시장에서 '신종예술'로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고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이제 우리 돈을 쓰면서 해외 흥행사들에게 열심히 구애(求愛)하던 시대는 지났다. '난타'의 성공신화는 우리 공연계에 좋은 상품을 만들면 오히려 그들이 우리 것을 찾는다는 발상의 전환을 가능케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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