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CEO자질이 보이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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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7면

<사업계획 1>

제품:부직포로 만든 가방과 머리안마

마케팅:가방구매자에게 머리안마를 서비스한다.

투자자 대우:순이익의 35%를 돌려준다.

사업성공 이유:머리안마전문점은 세계에서 유일하다. 우리밖에 없는 전문기술로 서비스하면 성공할 수밖에.

<사업계획 2>

제품: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골프게임과 풍선 터뜨리기

제품선정 이유:아빠·엄마를 보면 스트레스가 많은데 이를 풀 만한 곳이 없다.

마케팅:명함을 돌리며 스트레스를 받는지 여쭌다.

투자자 대우:순익의 50%를 돌려준다.

어느 실직자의 사업계획서가 아니다. 아직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아빠·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초등학생들이 생각해본 미래의 회사경영계획이다.

주니어 CEO과정을 마친 서울과 경기지역 어린이 12명이 경희대 창업보육센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기중 기자

8일 오후 서울 경희대 창업보육센터에 최고경영자(CEO)를 꿈꾸는 12명의 '꿈나무 CEO'들이 모였다. 지난달 중소기업연수원 시화기술센터에서 국내 최초로 실시된 4박5일간의 '주니어 CEO과정'을 마친 후,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아이빛연구소(ivitt.com)주선으로 한달여 만에 모임을 가진 것.

교육과정에서 네명씩 팀을 이뤄 이들이 만든 사업계획서는 전혀 어린이가 한 것 같지 않다.나름대로 문제점을 들추고 사업구상을 하는 '매서움'이 스며 있다. 전문기술만이 성공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스트레스를 사업화할 수 있다는 데 착안하고 있다.

다과를 즐기며 뛰어노는 이들에게 좀 어렵다 싶은 질문을 던졌다.

-CEO가 왜 중요하지요.

"CEO가 없다면 회사 내의 여러 생각을 한가지로 묶을 수가 없잖아요."(류승호·고양용현초등5)

"회사가 갈림길에 서있을 때 선택을 해야하니까요."(이준성·고양용현초등5)

-CEO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리더십과 백(배경), 그리고 돈이죠.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이 리더십인데 리더십은 다른 사람에게 신용이 있을 때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박찬민·교대부설초등6)

-가장 존경하는 CEO는 누구죠.

"빌 게이츠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이기도 하지만 같이 회사를 차렸던 동료가 병이 걸려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그를 끝까지 돌봐준 것이 맘에 들어요."(이혜린·성저초등5)

"안철수씨를 좋아해요.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어 컴퓨터가 병들지 않게 하잖아요."(윤태일·논현초6)

-미래에 어떤 CEO가 되고 싶나요.

"돈을 잘 벌고 사원들에게 인기가 있어야 합니다."(이태용·도덕초등6)

이군은 돈을 잘 벌어야 회사경영에 문제가 없고 불우이웃들을 도울 수 있다는 부연설명까지 했다.

이들 12명 중 9명이 기업경영이 미래의 꿈이라고 대답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남선우(면목초등6)군은 "돈을 많이 벌어 불쌍한 사람을 돕고 싶어서"라고 답했고, 고은지(한천 초등4)양은 "좋은 옷을 만들어 겨울에 사람들이 춥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어린이들의 CEO교육은 지금까지 소비자중심으로 진행되던 경제교육을 생산자 입장으로 전환한 것이다. 예컨대 네명의 어린이가 직접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각각 재무와 경영·기술 등 부문을 맡아 어떻게 해야 생산한 제품을 보다 많이 판매할 수 있는지를 생각토록 했다.

교육진행을 맡았던 아이빛연구소의 황선하 대표는 "처음엔 팔짱만 끼고 있던 어린이들이 생산한 제품이 제대로 팔리지 않자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홍보하더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교육 후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물었다.

"TV를 보다 환율 등 경제얘기만 나오면 아빠에게 물어봐요. 아빠가 귀찮아할 정도예요."(박찬민·교대부설초등6)

"경제에 관심이 없어 처음엔 이 교육을 받도록 한 엄마가 싫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고마워요. 나중에 사장이 될 자신이 있거든요." (이익현·분당초등6)

"엄마가 용돈 주면 그날 다 썼는데 지금은 아껴써요. 그때 우리가 만든 제품을 파는 데 어려웠거든요."(임윤정·서울한천초등4)

연구소 측이 주니어 CEO교육을 받은 41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56%가 교육 후 기업경영의 어려움을 알게 됐다고 응답했다.

또 45%가 협상 원칙을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알았고, 돈을 낭비하지 않는 방법을 알았다는 어린이(56%)들도 많았다. 사업에서 가장 어려운 점에 대해선 51%가 "사업아이템을 찾는 일"이라고 답했다.

최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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