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천지창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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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천지창조

타임라이프 편집부 엮음, 이문희 옮김

분홍개구리, 224쪽, 1만7500원

"이 세상을 처음 만든 이는 물의 어머니(Water Mother)였다. 처녀시절에는 젊은 여신의 모습이었으며 하늘 아가씨로 불렸다. 하늘 궁전에서 떨어진 하늘 아가씨는 하염없이 아래로 내려가다 바닷물에 닿았다. 그 순간 아가씨의 몸은 이미 홀몸이 아니었고 이때부터 물의 어머니로 불렸다."

핀란드에서 전해 오는 창조 신화의 첫 부분이다. 하늘 아가씨는 산처럼 부풀어 오른 배를 안은 채 700년 동안 물 위를 떠다녔다고 한다. 거대한 어머니의 품 위에 물오리 한마리가 일곱개의 알을 떨어뜨렸고 그 껍질이 깨지면서 지구와 하늘과 해.달.별.구름.폭풍이 나왔다. 그리고 물의 어머니가 낳은 아들인 베이네뫼이넨이 첫 인간이라고 한다.

'천지창조'는 세상의 '처음'에 관한 이야기다. 세계 각국 30개의 신화와 전설이 실려 있다. 이를 읽다 보면 종교의 맹목적 신앙이나 과학의 냉소적 이성이 끼여들 틈이 없다. 우주와 생명 탄생의 비밀을 알고 싶어하는 인류의 오랜 궁금증이 상상과 감성의 날개를 타고 무한대로 확장될 뿐이다. 기독교의 '천지창조'가 절대 신화로 군림하지도 않는다. 중국.미얀마의 창조 신화와 함께 우리나라의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이야기도 나온다.

지진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소개됐다. 인도네시아 셀레베스 사람들은 지구가 거대한 돼지의 꺼끌꺼끌한 등 위에 놓여 있어 지진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했다. 돼지가 등이 가려우면 어마어마하게 큰 야자나무의 울퉁불퉁한 껍질에 등을 비비기 때문에 땅이 요동친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이야기가 몽골에서도 전해진다. 몽골 유목민 전설에 의하면 지구는 거대한 개구리의 등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라앉아 있는데 개구리가 몸을 이리저리 뒤틀 때마다 지진이 일어난다고 여겼다.

이 책은 미국의 타임라이프사가 1986년에 펴낸 '인챈티드 월드(Enchanted World)'시리즈(전21권)의 첫 권이다. 전 세계의 신화.전설.민담을 주제별로 모아 화려한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정리해 냈다. 이번에는 '천지창조' '용''거인' '사랑' '마법'등 다섯 권이 먼저 나왔고, 앞으로 3년에 걸쳐 21권을 모두 펴낼 예정이다. 이어질 제목은 '물의 정령''요정''난장이''유령''밤의 지배자'등이다. 각 권에 30개 이상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둘째권 '용'을 보면 동서양 전설의 뚜렷한 차이가 드러난다. 동양에선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신의 모습인 반면, 서양에선 포악하고 잔인한 괴물로 묘사된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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