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민 수천명 컨테이너 생활 "겨울 지낼 생각에 마음이 시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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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다섯평 남짓한 철제 박스에 갇혀 겨울을 보낼 생각에 아득할 뿐입니다."

태풍 '루사'로 집은 침수되고 축사와 농경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거의 모든 재산을 잃은 이동호(43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씨는 바닥 난방시설만 갖춰진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한숨만 쉬고 있었다.

박스 밖에서 부탄가스로 아침밥을 짓고 있던 李씨의 부인 김종순(40)씨는"연로하신 시부모와 직장에 다니는 딸은 도저히 이곳에서 살 수 없어 속초에 있는 친척집으로 보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태풍으로 졸지에 집을 잃고 컨테이너 박스에서 살고 있는 수재민은 9일 현재 강원도에서만3백30가구 1천2백여명에 이른다. 경남 김해시 한림면 주민 2백여명도 컨테이너 박스 신세를 지고 있다. 강원도와 충북 영동군은 추석 전에6백70개, 2백여개의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컨테이너 박스에서 추석은 물론이고 겨울을 나야 할 수재민은 전국적으로5천여명에 이를 전망이다. 컨테이너 박스 한개는 한 가족만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李씨 가족 등 13가구 41명이 오순도순 살아온 죽왕면 구성리는 농사가 주업이지만 산과 계곡이 어우러져 뛰어난 경치와 송이 산지로 이름난 '부자 마을'이었다. 그러나 1998년과 2000년 두차례의 산불로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섰던 인근 산들이 폐허로 변하는 바람에 소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송이 채취가 불가능해졌다. 게다가 이번 수해로 농경지마저 빗물에 휩쓸려나가 을씨년스런 마을이 돼 버렸다. 현재 이 마을에서는 다섯가구가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삼척시 정라동에 사는 심만섭(65)씨도 사정은 엇비슷하다? 태풍이 불어닥친 지난달 31일 沈씨는 자식들이 추석 때 찾아올 집이 없어질 것을 걱정하며 끝까지 집을 지키려다 경찰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됐다. 沈씨는"추석 때 차례를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막막하다"며 '끼니가 걱정인 형편에서 날씨까지 추워져 걱정'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컨테이너 박스에서 살고 있는 이재민들은 겨울이 닥치기 전 가옥에 대한 복구가 이뤄져 이 생활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하지만 이들의 희망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당장 주택 보수공사가 시작된다 해도 겨울이 오기 전에 마무리하기 어려운 데다 안전 등의 문제로 종전의 집터에 다시 집을 지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워낙 수해가 커 농경지도로구조물 등이 모두 쓸려나가는 바람에 아예 지적도를 다시 그려야 할 만큼 지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구성리 최정남(50)이장은 '이주 전까지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공용 화장실주방 등 필수시설과 전화냉장고TV 등이 지원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성.삼척=이승녕손해용 기자

(franc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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