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침책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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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 나그네가 늪을 만났다. 그는 지나가는 소년에게, 늪 바닥이 단단하냐고 물어 보았다. 소년은 단단하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 말을 믿고 늪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곧 허리까지 빠져들어갔다. 그가 고함을 질렀다.

"이놈아, 바닥이 단단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단단하다니까요? 절반도 못 들어가놓고 뭘 그래요?"

『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

19세기를 살다 떠난 미국의 자연주의자이자 은둔 시인이었던 소로의 인용을 재인용합니다. 나는 '바닥'을 '인생'으로 읽습니다. 한국어 번역본이 여러 종 있으니 어느 걸 읽으셔도 좋지요. 1999년 보스턴 간 김에 고은 시인과 함께 월든에 가보고 싶었는데 시인께서 자꾸 다른 데 가자시네요. 나중에야, 시인께서 바로 전날 거기 다녀오셨다는 것을 알았지요. 소로는 내 마음에 떠 있는 별입니다. '월든'은 그 별이 비치던 호수 이름이니, 가서 보나마나.

이윤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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