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섬'에 사는 현대인 고립·욕망 해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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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대도시에서 아파트는 일반적으로 가족들의 오붓한 삶의 공간이지만 단절을 은유하는 말로도 통한다.

현관문만 닫으면 이웃과 소통이 불가능한 '외딴섬'과 다를 바 없는 게 아파트이니 말이다.

프로젝트그룹 작은 파티가 만드는 연극 '405호 아줌마는 참 착하시다'(오는 13~29일 동숭아트센터 소극장)는 그 단절된 세상을 엮은 극작·연출가 박상현의 신작이다.

미국 오하이오대에서 2년간 연극을 공부하고 지난 8월 귀국한 박씨는 '난 새에게 커피를 주었다''푸른 무덤의 숨결' 등 문제작을 낸 연극계의 기대주다. 이번 작품은 직접 연출을 하지 않고 서강대 후배 김동현에게 양보했다.

작가는 단절은 물론 그것이 필연적으로 동반할 수 있는 욕망의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평범한 유지호·심인희 부부가 무덤덤한 일상에 찌든 단절을 상징한다면, 카메라로 이웃을 엿보는 건너편 아파트의 사진작가 문진수는 그 단절을 비집고 피어나는 은밀한 욕망의 그림자다. 박씨는 "이 양면성에 초점을 맞춰 현대사회의 고립된 인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추리극적인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연극은 동일한 실내 구조를 가진 두 공간에서 시간이 엇갈려 흐르도록 하는 구성을 택했다.

그때 그때 내용에 따라 두개의 공간이 한 무대에서 빠르게 교차하며 진행된다는 의미다.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간결한 무대장치와 상징적인 빛과 소리가 동원된다.

연출가 김동현은 '꿈,퐁텐블로''고래가 사는 어항''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등에서 보여주었듯이,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연출로 정평이 나 있다.

김씨는 연극에 관한 지향점이 비슷한 작가 선배와 호흡을 맞추게 돼 어느 작품보다 완성도가 높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극작·연출 못지않게 탄탄한 출연진도 이 연극이 주목받는 이유다.

유지호 역의 남명렬을 비롯해 심인희 역의 길해연, 문진수 역의 이남희, 경비원 역의 오달수, 아줌마 역의 박남희 등은 대학로를 대표하는 젊은 실력파 배우들이다.

'남·길 커플'은 30대 중산층 부부의 일상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중추며, 해설자 같은 역할로 출연하는 이남희는 시종 극적인 묘미를 지탱해 주는 미스터리적인 인물이다. 아무튼 이들이 한 무대에 모인 것만으로도 연극계의 화젯거리가 될 정도이니 이들의 연기력은 이미 검증된 셈이다.

공연시간은 화·수·목 오후 7시30분, 금·토 오후 4시30분·7시30분, 일·공휴일 오후 3시, 월 쉼. 1만5천~1만원. 02-747-5161.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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