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보다 돈 많았던 '조선 재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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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조선조 말 사회상의 소설화에 매달려 온 작가가 맨주먹으로 일어선 조선판 재벌 15인의 행적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얼개에 다큐멘터리 방식을 접목시켜본 것이다. 당시 눌려 지내던 상인출신들인 만큼 성공한 뒤에야 각종 문헌이나 당시 신문기사에 몇 줄씩 비칠 정도여서 자료가 충실할 리 없다. 그래도 빈약한 자료를 뒤지고 엮어 뼈대를 세우고, 상상력으로 살을 붙여 재미있게 읽힌다.

한국 자본주의의 성립시기를 언제로 볼 것인가를 싸고 학계에선 논란이 여전하지만 19세기 말에 이르면 국가경제를 좌우할 만한 '큰 손'들이 나타났다.

사신을 따라 청나라에 가다 중국인 사형수를 구해줬더니 훗날 보은으로 수 만석지기 만주땅을 받았다는 이덕유. 그의 어음은 고종황제의 어음보다 신용이 있었단다. 청천강 도깨비의 계시로 홀로 일찍 강을 건너 가 횡재의 기회를 잡은 '도깨비 부자'오민순,국내 최초로 백화점을 개설한 서울 종로 국일관 창업자 최학 등 잘 알려지지 않은 거부(巨富)들의 성공담이 담겼다.

'노다지왕' 최창학은 삶은 개머리로 고사를 지낸 후 산신령이 금맥을 알려줬다든가? 일제에 전투기 한 대분 '국방성금'을 헌납했던 그는 해방후 백범 김구선생이 귀국하자 경교장을 숙소로 헌납하는 솜씨를 보인다.

개성 인삼장수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등 벌이는 일마다 말썽이 그치지 않았던 이용익은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설립하고….

압록강을 건너 인삼을 팔고 등짐장수를 하던 이들이 동양 3국을 떵떵 울리며 나랏님보다 더한 부(富)를 쌓고 이를 푸는 과정이 흥미롭다. 대체로 사후(死後)엔 그 많던 재산이 간 곳 없고 후손들이 호사를 누리지 못한 것이 이들의 공통점. 하지만 돈버는 비결을 익히려거나 상도(商道)를 찾으려면 실망할 지 모른다.

"세상의 큰 흐름을 아는 것이 장사의 요체다. 그 흐름을 모르면 남보다 뒤처지게 마련. 난세에 때만 기다림은 흐름을 잡아 결단을 내리는 것만 못하다"는 등 인물마다 그 머리에 나름의 치부술(致富術)을 피력하긴 했다. 하지만 간략한데다 작가의 목소리란 심증이 짙다.

이런 아쉬움은 각 인물편 사이사이에 단발령·보부상·종로시전·기생 등 당시 사회상을 읽어낼 키워드를 백과사전식으로 다룬 '전하만상공부'15편을 읽으면 어느 정도 덜어진다. 광목 한필에 5원 하던 1910년, 매월 8백원씩 받고 기생 20명이 미국공연을 준비 중이었다는 등 갖가지 일화가 실려 훌륭한 조선 풍물기 구실을 한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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