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MB, 왜 다시 친서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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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청와대발로 대기업을 겨냥한 날 선 발언들이 불쑥불쑥 등장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주에만도 “재벌에서 일수 이자 받듯 이자를 높게 받는 것은 사회정의와 안 맞는다” “현금 많은 대기업이 투자 안 하니 서민이 더 힘들다”란 말을 쏟아냈다.

이런 발언들은 ‘친서민’ ‘서민 속으로’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해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의 혼란기에도 ‘중도 실용주의와 친서민’ 카드를 꺼냈었다. 그런 점에서 ‘2차 친서민 드라이브’인 셈이다. 문제는 이번의 친서민 행보가 ‘서민·중소기업’ 대 ‘대기업’의 대립구도로 표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의 인식에 어떤 변화가 있는 걸까. 도화선이 된 건 6·2 지방선거 패배였다고 한다. 국정 지지도가 40%를 넘는 상황에서 받아든 완패 성적표를 계기로 이 대통령의 책상엔 각종 패인 분석 보고서가 쌓였다. 선거 직후 정무수석실은 “경제지표가 좋아질수록, 대기업이 몇조의 순이익을 기록했다는 뉴스를 접할수록, 서민들은 ‘그들만의 잔치’에 더 열을 받았다 ”란 보고를 올렸다고 한다. 홍보·민정라인에서도 “경제위기 극복이 오히려 서민층의 소외감을 키웠다” “금융위기 때 대기업들이 하청업체들에 비용 부담을 전가했다 ”는 보고서를 올렸다.

여권 관계자는 26일 “대기업 독식 비판론이 확산되면서 청와대는 ‘서민 속으로’란 카드를 빼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취임 후 대기업을 향해 쌓여온 이 대통령의 불만도 함께 폭발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전경련 방문 때부터 “기업환경은 조성해줄 테니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늘려달라”고 당부했지만, 대기업들이 별다른 성의를 보이지 않아 답답해했다고 한다.  

최근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도 이 대통령은 “대기업들이 하청기업이 해놓은 일을 채가고, 사람까지 빼낸다는데 안 될 일”이라며 직설적인 불만을 표출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환율 방어 등 정부 정책으로 각종 수혜를 본 대기업들이 고용과 투자는 주저한다는 게 대통령 불만의 요체”라며 “욕은 정부가 먹고, 과실은 대기업들이 챙기는 데 대한 반감이 청와대 안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근저에 깔린 배경이야 어떻든 청와대는 현재의 ‘서민정책’ 드라이브가 ‘정치적 목적에 의한 대기업 옥죄기’로 비쳐지는 건 경계한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간 상생의 모델을 찾자는 이 대통령의 주장은 무조건 대기업을 때렸던 과거 정부의 포퓰리즘과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실제 이 대통령도 26일 오후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친서민 정책이 반대기업 반시장경제로 오해돼선 곤란하다”는 취지로 확대해석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고 한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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