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 새 생존 위한 발버둥 뚜렷…현실적이지만 진보 성향 훨씬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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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1세기 한국에선, 고등학교 졸업자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에 다니는 젊은이들은 그들의 선배들과 달리 스스로를 ‘지성인’이라는 특권층으로 여기지 않는다. 세칭 명문대든, 그렇지 못한 대학이든 졸업장이 장래를 더 이상 보장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대학에 진학하기만 하면 책에서 손을 떼는 대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교수가 출석을 부를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강의실은 항상 만원이다.

대학생들은 학점·영어성적·자격증·외모·체력 등 각종 명세서(스펙:specification)를 쌓기에 바쁘다.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예전처럼 조용히 혼자서 공부만 할 수 있는 곳을 찾지 않는다. 학원에 등록하고, 동료들과 세미나 팀을 꾸리며, 팀을 짜서 과외를 받기도 한다. 대학이 상아탑의 위용을 상실하고, 취업률 향상에 주력하는 직업 교육기관으로 탈바꿈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거의 모든 대학이 영어 강의를 강조하는 것도 학생들의 명세서 축적에 보탬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추이를 살펴보면, 대학생들이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1997~98년 외환위기와 뒤 이은 세기 전환기에 한국 사회에 밀어닥친 경제·사회 변동이 대학생들의 태도를 크게 바꿔 놓았다. 그때 대학생들의 이상 추구 성향이 급격히 줄어들고 현실 지향적 태도가 대폭 강화되었다. 2008년의 국제 금융위기가 대학생들까지 움츠러들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전에 비하면 강도가 약했다. 그래도 대학생들은 스스로를 진보적이라 평가하는 사람이 보수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 어느 사회에서든 젊은이들은 새로운 사회 질서를 모색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다. 보수-진보는 우파-좌파와는 차원이 다르다.

2010년을 사는 대학생들은 지난 세기 대학생들과는 판이한 사고 방식과 행동 양식을 갖고 있다. 물질주의자가 줄고 탈물질주의자가 대폭 늘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신을 진보라고 평가하는 사람일수록 탈물질주의 성향이 강하다.

경제적 선진화와 정치적 민주화의 세례를 받으며 성장한 세대에게 낡은 가치관과 태도를 강요해 봤자 소용이 없다. 기성세대는 변화된 사회·경제 환경에 적응해 생존하려는 젊은이들을 격려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

구희령·정선언·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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