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리포트>아홉 머리가 뭉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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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3면

인터넷 솔루션을 개발하는 벤처기업 ㈜에스아이의 신웅호(44)사장은 요즘 신바람이 난다. 옛 직장 동료와 힘을 합쳐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신 사장은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는 정보보안시스템 개발 벤처 ㈜티에스온넷의 임연호(45)사장과 공동으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정보보안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 연구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두 사람은 현재 작업 중인 재난 복구 프로그램 개발이 완료되면 공동 마케팅에도 나설 계획이다. 프로그램 개발은 건물 4층과 5층에 자리잡은 두 회사 연구팀이 수시로 오가며 진행하고 있다.

신 사장은 "새로운 사업영역 개발이 숙제였는데 옛 동료였던 임사장을 만나 힘을 합치기로 했다"면서 "앞으로 공동 마케팅 등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는 입체음향 벤처기업 543미디어텍의 이명진(49)사장과 반도체 설계 벤처기업 아날로그칩스의 송원철(47)사장도 공동으로 3차원 입체음향 반도체 칩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사장과 송 사장 역시 ETRI 시절부터 호형호제(呼兄呼弟)했던 막역한 사이.

한솥밥을 먹으며 IT 신기술 개발에 매달리다 각자 창업에 나섰던 연구진이 한지붕 아래 다시 뭉쳤다. ETRI 출신 9개 벤처기업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최근 '본가'인 ETRI 인근에 지하 1층·지상 5층 연건평 1천3백평 규모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입주했다. IT분야 벤처기업들이 모였기에 이름도 'IT 플렉스'로 지었다. 정보보호·입체음향·인터넷 콘텐츠·정보통신용 부품·반도체 칩·이동통신시스템 등 분야도 다양하다. 신 사장은 "일종의 IT백화점"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한곳에 둥지를 틀게 된 것은 서로 비슷한 처지 때문. 대부분의 '식구'가 창업 후 2~3년간의 연구개발 과정을 거치고 본격적인 성장 단계로 진입하는 기업이다. 임대하자니 마땅한 공간이 없고 각자 사옥을 마련하자니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택한 것이 '한지붕 동거'. 임 사장은 "평소 가까이 지내던 ETRI 출신 벤처기업들끼리 모여 고민하다 자연스레 '한곳에서 일해보자'고 합의해 30억원을 모아 땅을 사 건물을 짓게 됐다"고 말했다.

뭉쳐놓고 보니 할 일이 더 많아졌다. 이미 진행 중인 다양한 형태의 공동 개발뿐만 아니라 공동 마케팅이나 부품 공동 구매, 공동 브랜드 사용 등까지 준비하고 있다.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홈페이지를 만들고 공동 브랜드를 도입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입주사들이 1억원 정도씩 적립한 뒤 자금이 급하게 필요한 곳에서 우선 사용할 수 있는 품앗이 형태의 '미니 신용협동조합'도 조직 중이다. 또한 직원들의 체력 단련을 위해 이 건물에는 60평 규모의 헬스장과 체육시설이 갖춰져 있다. 직원 20명 안팎의 기업 한곳이었다면 꿈도 꿀 수 없는 시설이다.

입주기업협의회 대표인 이명진 사장은 "공간 공유에 그치는 형식적인 협력이 아니라 기술 개발과 공동 경영이란 실질적 협력 관계로까지 확대시킬 계획"이라면서 "9개 IT 기업이 한지붕 아래서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며 새로운 개념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구남평 대덕넷 기자

★ ETRI는 정보통신 분야의 최고 국책 연구기관이에요.우리나라가 강점을 갖고 있는 반도체·전자교환기·CDMA 관련 기술을 여럿 개발했지요.이곳 연구원 출신이 설립한 벤처기업들이 수백개나 돼 벤처사관학교라고도 불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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