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보다는 종목을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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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2면

"시장을 보지 말고 종목을 봐라."

오랜 펀드매니저 생활을 통해 내가 생각해 낸 좌우명이다. 그 덕분에 지난해 9·11 테러 직후에 우량 종목을 많이 사들여 좋은 수익을 낼 수 있었다. 당시 증시는 추락했지만 종목의 펀더멘털(기초 여건)은 여전하다고 보고 승부수를 띄울 수 있었다.

미국의 전설적인 투자자인 워런 버핏과 프랭클린 템플턴 같은 이들은 시장보다 종목을 보고 투자하는 것 같다. 최근 버핏은 한물 간 것으로 보이는 에너지 주식을 사모으지 않았는가.

그러나 시장을 보지 말고 종목을 보라는 좌우명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나 역시 간혹 그 원칙에서 흔들릴 때가 있다.

혹자들은 이런 말을 한다. "한국처럼 주식시장의 등락폭이 큰 시장에서 어떻게 시장을 보지 않고 종목만 볼 수 있느냐."

그러나 나는 우리 시장처럼 장세 변화가 무쌍한 곳에서는 더더욱 종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주식시장 전체보다 아무래도 몇몇 종목을 더 잘 알 수 있다. 둘째 해당 종목에 대해 잘 알게 되면 각종 악재로 인해 주가가 떨어지더라도 참고 견딜 수 있다.

그럼 종목을 어떻게 선별할 수 있을까. 일반인들은 펀드매니저들이 은밀한 정보를 많이 입수할 것으로 생각한다. 즉 애널리스트들이 보내주는 종목 분석 보고서를 통해 정보를 많이 입수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보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신문과 잡지에서 더 많은 정보를 입수한다. 신문·잡지의 기사는 가공되지 않은 정보를 담고 있다. 반면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는 원천 정보를 한 차례 가공하면서 애널리스트의 주관이 가미된다. 이런 보고서를 보게 되면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보고서를 작성한 애널리스트의 생각에 함몰되기 쉽다.

일단 그렇게 원천 정보를 입수한 뒤 권위있는 애널리스트와 투자전략가의 보고서를 참고한다.

원천 정보를 입수한 뒤 현장을 방문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가령 용산 전자상가를 둘러보면 전자업체의 실적을 어림짐작할 수 있고, 백화점 매장을 가보면 백화점의 분위기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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