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넉넉하면 삶은 언제나 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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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지은이는 퓰리처상을 받은 극작가이자 소설가임에도 영문학사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을 정도로 푸대접을 받고 있다. 형식이 새롭지도 않고 주제의식이 강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가 자아내는 감동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혹은 『어린 왕자』에 견줄 만하다.

때는 2차 세계대전, 미국의 이타카란 가상도시에 사는 소년 호머가 주인공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형은 전쟁에 나간 형편이라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동생으로 이뤄진 가정에서 전보배달부를 하며 가장역할을 한다. 도대체 희극적 요소라고는 없고 오히려 비극에 어울릴 무대장치다. 여기에 비열한 사람-딱 한 사람 나온다-은 있어도 나쁜 놈은 없으니 갈등의 소지도 적다. 순수한 영혼은 있어도 어릿광대는 안 나온다. 대부분의 웃음이 상대의 바보 같은 짓을 보면서 생기는 자만심 또는 자부심에서 비롯된다니 얽히고 설킨 희극이 되기엔 어림없는 구조다. 영웅의 모험담도 없고…. 읽는 내내 작가는 왜 인간희극(원제가 휴먼 코미디)이란 제명을 붙였을까 궁금할 정도였다.

그런데 별로 팔리지도 않는 이 책이 국내에선 수차례 출판되었으니 신기하다. 양장본-을유문화사판 세계문학전집-에서 문고본(정음사), 단행본(문예출판사·샘터사) 등 다양한 형태로 출간됐다. 소설 속의 대화 한 구절. "학생들 중 누가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두뇌가 명석하거나 둔하거나 그런 것은 만약 그 애가 인간성만 지니고 있다면-양심이 있어서 진실과 명예를 사랑한다면- 만약 그 자신보다 못하거나 나은 사람을 다 존경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단다." 주인공의 선생님이 호머에게 하는 이야기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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