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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건강] 환갑 넘긴 조선 왕들의 장수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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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

어의(御醫)를 늘 곁에 두고, 최고의 식재료를 써서 만든 수라를 받았던 조선의 왕. 그러나 환갑을 넘긴 이는 드물었다. 연산군.광해군을 뺀 조선 왕(25명)의 평균 수명은 46세에 불과하다. 이들 중 40세조차 넘기지 못한 왕이 11명이다. 천하를 호령하고 온갖 호사를 누렸던 왕들이 단명한 이유로 과도한 영양, 스트레스, 운동 부족이 꼽힌다. 조선 왕의 건강법을 연구한 하늘땅한의원 장동민 원장은 "왕권이 약해진 조선 후기에는 왕들이 정치의 전면에서 물러서면서 평균 수명이 더 낮아졌다"고 진단했다. 환갑을 넘긴 조선의 왕은 태조(74).정종(63).숙종(60).영조(83).고종(67). 여기에 광해군(67)을 포함하면 모두 6명이다. 이들에겐 어떤 장수 비결이 있었을까.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태조…전장서 다진 강인한 체력

태조 이성계는 장수로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다. 전투와 훈련이 그에겐 더없이 훌륭한 운동이 됐을 것이다. 그는 58세에 왕위에 오른 뒤 앓기 시작한다. 병이 심해진 65세 때 정종에게 왕좌를 넘기고 함흥으로 내려간다. 그 후 다시 건강하게 지내다가 74세에 풍을 맞은 뒤 넉 달 만에 세상을 뜬다. 풍은 피부병.당뇨병(소갈증)과 함께 조선의 왕들을 괴롭힌 대표적인 질환이다. 동의대 한의대 김훈 교수는 "요즘 풍은 중풍(뇌졸중)을 뜻하지만 조선 왕조실록에선 중풍.관절염.감기가 두루 풍으로 표현된다"며 "조선의 왕들은 당뇨병에 관한 한 가계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질 등 여러 질병을 끼고 살았던 세종도 당뇨병 환자였다. 종기.부스럼 등 피부병에 걸린 왕도 많았다. 문종.효종은 피부병으로 승하했다.

정종…승하 2년 전까지 매일 격구

태조의 아들인 정종은 조선식 '골프'로 건강을 챙겼다. 바로 격구다. 격구는 땅에 구멍을 파고 달걀만한 공을 집어넣는 운동이다. 신하들은 매일 격구를 즐기는 왕에게 자제할 것을 청했으나 "과인이 병이 있어 수족이 아프고 저리다. 몸을 움직이고 기운을 통하게 하려 격구를 한다"(정종실록)며 물리쳤다. 정종은 재위 2년2개월 만에 동생 태종에게 왕위를 넘기고 약 20년을 더 산다. 마음의 안정과 평화, 그리고 운동이 장수 비결이었다. 정종은 세상을 하직하기 2년 전까지 격구를 즐겼다. 그러나 대부분 왕은 운동과 담을 쌓고 지냈다. 몇 걸음의 거리도 가마를 타고 다녔으며 세수도 직접 하지 않았다. 경희대 한의대 김남일 교수는 "왕들의 운동이란 온천욕과 활쏘기, 그리고 식사 후에 배를 문지르며 궁내를 산책하는 것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광해군…어의 허준 믿고 따라

광해군은 세자 시절 임진왜란을 맞아 직접 전투에 참가한 활동형이었다. 허준이란 당대의 명의를 만난 것도 그에겐 행운이었다. 그는 허준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부왕인 선조가 숨진 뒤 치료를 담당했던 허준을 귀양 보내지만 나중에 다시 불러들여 자신의 건강을 책임지게 한다(광해군 일기). 반면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은 어의의 조언을 무시하기 일쑤였고 때때로 정반대로 행동했다. 그래서 그가 37세에 숨지자 독살설이 퍼지기도 했다.

숙종…오골계 등 검은색 음식 즐겨

장희빈의 연인 숙종. 야사엔 "그들의 사랑이 불과 같아 한겨울밤에도 열기를 식혀줄 부채가 필요했다"고 전한다. 신하들에게서 '여색을 멀리 하라'는 충언까지 들었던 숙종은 타고난 건강 체질이었다. 어릴 때 천연두(두창)를 심하게 앓고서도 거뜬히 소생했으며, 그 뒤 종기.임병 등 여러 질병을 앓았지만 그의 면역력이 지켜줬다. 숙종이 챙겨 먹었던 음식은 검은콩.검은깨.오골계.흑염소 등 검은 식품이다. 특히 건강한 오골계를 골라 그 속을 비운 뒤 흑염소 고기.검정콩.검은깨를 넣고 두 시간쯤 푹 고아 고기와 국물까지 먹었다고 전해진다. 한방에선 검은색이 신장의 기운을 높여준다고 본다.

영조…수라 5회서 3회로 줄여

적게 먹으면 오래 산다는 것은 미국 노화연구소의 동물 실험을 통해 증명됐다. 이를 실천한 이가 영조다. 영조는 하루 다섯 번이었던 수라를 세 번으로 줄였다. 대신들과 회의 도중에도 식사 때가 되면 수라부터 받을 만큼 규칙적으로 식사했다. 밥도 잡곡밥을 더 좋아했다. 그는 당쟁을 없애기 위해 탕평책을 실시했다. 탕평채는 이를 논의하는 자리에 처음 올랐던 음식이다. 삼짇날의 절식인 탕평채는 녹두묵에 고기 볶음.미나리.김 등을 섞어 만든 묵무침이다. 영양적으로 매우 균형 있는 식단이다.

고종…술과 맵고 짠 음식은 멀리

고종의 식단은 요즘 영양학자에게 최고의 점수를 받을 만하다.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을 멀리 했기 때문이다. 짠 음식은 고혈압.위암 등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또 고기보다 채소를 즐겼다. 술은 입에 대지 않았다. 그의 겨울철 야식 메뉴는 온면.냉면.설렁탕이었는데, 이때도 맵고 짠 양념은 들어가지 않았다. 국물도 육수 대신 동치미 국물을 사용했다. 수라 위에 팥밥과 쌀밥을 동시에 올려 놓고 소화가 안 되거나 속이 안 좋을 때는 팥밥과 미역국을 먹었다. 고종이 열강의 압력 등 극심한 스트레스에도 오래 산 것은 양.한방의 혜택을 동시에 누린 덕분이라는 분석도 있다.

***임금님의 다섯 끼 수라상

■ 초조반 : 오전 7시 전에 받는 상으로 죽.응이(녹말로 쑨 죽).미음 등 유동식이 기본. 젓국찌개.동치미.마른 반찬을 곁들임

■ 아침상 : 오전 10시쯤 받는 상으로 12첩 반상을 올림

■ 낮것상 : 점심에 먹는 간식으로 국수.장국.다과 등이 메뉴

■ 저녁상 : 오후 5시쯤 받는 상으로 12첩 반상을 올림

■ 야참 : 약과.수정과.식혜.죽.간단한 면 등이 메뉴

***조선 후기 수라상 차림

■ 수라(왕이 먹는 밥) : 백반(흰 쌀밥)과 홍반(팥물을 이용해 만든 붉은 쌀밥)으로 구성

■ 기본 밑반찬 : 탕(국).조치(찌개). 침채(김치).장.찜(또는 선).전골

■ 탕 : 미역국과 곰탕

■ 조치 : 토장 조치와 젓국 조치

■ 침채 : 동치미.젓국지(배추김치).송송이(깍두기)가 기본

■ 장 : 간을 맞추는 용도로 사용. 간장.고추장.초장.게장

■ 찜과 선 : 둘 중 하나만 상에 올림. 동물성 재료로 만든 것이 찜, 식물성 재료로 만든 것이 선

■ 전골 : 즉석에서 익혀 먹는 음식. 화로.풍로를 이용해 즉석에서 요리

■ 12첩(12가지 반찬) : 도라지.호박.숙주나물.무생채.구이.조림.산적.자반.젓갈.육회.생선회.편육

***왕의 운동과 스트레스 해소법

■ 격구 : 골프와 비슷한 운동 활쏘기.농사.전신욕.반신욕.매사냥

자료:'왕처럼 먹고 왕처럼 살아라'

(청아출판사)

***역대 왕의 주요 지병들

■ 피부병 : 종기.부스럼이 악화돼 패혈증으로 숨진 왕도 있다. 문종은 종기를 치료하다 숨졌다. 한의학 서적에 피부병(옹저)에 관한 내용이 많다

■ 풍 : 태조 이성계의 죽음과 관련 있다. 뇌졸중(중풍) 외에 관절염.감기 증세에도 풍이란 표현을 쓴다

■ 당뇨병(소갈증) : 많은 왕이 이 병을 앓아 가계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세종이 '질병 백화점'이 된 것은 당뇨병 합병증 때문이다.

자료:동의대 한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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