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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마지막 샷, 클럽 프로에게도 문 열린 기회의 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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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호 16면

PGA 챔피언십에서는 이변이 심심찮게 나온다. 지난해에는 양용은(왼쪽)이 세계랭킹 1위 타이거 우즈를 누르고 우승했다. [차스카 AP=연합뉴스]

최고의 골프 대회는 어느 대회일까. 미국 문화권과 영국 문화권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미국 쪽에서는 마스터스>디 오픈>US 오픈>PGA 챔피언십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영국 문화권을 포함한 다른 지역에서는 디 오픈>마스터스>US 오픈>PGA 챔피언십이 모범답안이다. 미국 선수나 언론인 중엔 마스터스나 디 오픈보다는 그들의 내셔널 타이틀이 걸린 US 오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꽤 있다. 물론 이런 질문에 정답은 없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대회가 최고 대회다. 그러나 엇갈리는 의견 속에서도 공통점이 하나 있다. 네 개의 메이저 대회 중 PGA 챔피언십의 권위가 가장 떨어진다는 것이다.

돌아온 메이저 골프대회의 계절 <5> 94년 전통 PGA 챔피언십

4대 메이저 중 마지막에 열리는 PGA 챔피언십은 ‘영광의 마지막 샷’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있다. 그러나 골프계에서는 순위로 네 번째 메이저 대회라고 본다. 속마음을 숨기지 않는 데이비드 듀발은 전성기에 이렇게 얘기를 한 적이 있다.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 당연히 매우 좋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세 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만큼은 아니다. PGA 챔피언십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네 번째 메이저인 것은 확실하다.”

미국의 프로골퍼들이 그들만의 협회(미국 PGA)와 대회(PGA 챔피언십)를 만든 1916년 프로골퍼들의 위상은 높지 않았다. 그래서 PGA 챔피언십도 화려하게 시작하지 못했다. 디 오픈(1860년 시작)이나 US 오픈(1895년 시작)에는 전통에서 뒤지고 골프의 성인 보비 존스가 의욕적으로 만든 마스터스의 신성함도 없다.

PGA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

PGA 챔피언십은 대회 시기와 코스 선정 등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1960년대까지 7월에 열렸다. 디 오픈 바로 다음 주였다. 미국 선수들이 디 오픈에 나가지 않았을 때는 상관없었지만 60년 아널드 파머 이후 스타들의 디 오픈 참가가 필수가 된 이후에는 괴로운 상황이 됐다. 71년엔 메이저 개막전이 되려고 2월에 플로리다에서 대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겨울에 대회를 열면 개최지가 미국 남부 지역 일부로 제한된다. 골프 팬들은 한겨울에 웬 메이저 대회냐고 심드렁했다.

더 무서운 것은 마스터스다. ‘진정한 골프 시즌의 시작’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4월 초 열리는 마스터스는 PGA 챔피언십을 곱게 보지 않았다. 한 번은 눈감아 줄 수 있어도 시즌 첫 메이저를 영구히 빼앗기려 하지 않았다. 마스터스가 PGA 챔피언십에 해코지할 수는 없지만 막대한 중계권료를 내는 방송사는 오거스타 내셔널을 훨씬 더 무서워한다.

PGA 챔피언십은 이후 대회를 8월로 미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적인 시기는 아니다. 6월과 7월 US 오픈과 디 오픈에 온 힘을 쏟은 선수들은 PGA 챔피언십이 열리는 8월 초엔 배터리가 꽉 차진 않는다. 날씨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덥다. 최고 선수들의 의욕이 최고는 아니어서 PGA 챔피언십에서는 A+급 선수 바로 아래 단계의 선수들이 첫 메이저 우승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PGA 투어 플레이오프가 바로 뒤에 생겼다. 두 메이저 대회와 상금 1000만 달러짜리 플레이오프에 끼여 있는 신세다.
초창기 PGA 챔피언십이 열린 코스는 최고 코스가 아니었다. 현재는 사라진 곳도 많고 80년대까지만 해도 그 동네 사람만 아는 코스에서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코스 빌리기가 쉽지 않아서다.

골프 클럽이 메이저 대회를 치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최고 선수와 맞설 튼튼한 코스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클럽은 코스 관리를 대회 조직위에 1년 정도 넘겨 줘야 한다. 회원들은 그동안 마음대로 골프를 즐기기 어렵다. 대회를 앞두고는 클럽하우스 라커의 물품들도 다 빼야 한다. 대회 때 잔디는 갤러리에게 짓밟혀 황폐화된다. 명코스의 회원들은 US 오픈이라면 몰라도 PGA 챔피언십 때문에 이런 불편을 감수하지는 않았다.

90년대 들어 PGA 챔피언십을 여는 코스가 부쩍 좋아졌다. PGA가 티켓과 음식·기념품·주차료 등 TV 중계권을 제외한 모든 수익을 클럽과 나누기로 하면서다. 냉정히 말하면 클럽은 큰돈을 받고 코스를 빌려주는 것이다. 문제도 있었다. PGA는 수익을 독점하려고 PGA가 소유한 B급 골프장에서 대회를 자주 열려다가 “2부 투어나 할 코스에서 왜 메이저 대회를 계속 여느냐”고 선수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입장료 수익 등을 나누다 보니 일부 클럽에서는 흥행을 위해 비키니 모델을 데려다 놓기도 했다. 시행착오 속에서 코스 문제는 얼추 해결됐다. 21세기 들어 PGA 챔피언십이 열리는 코스의 수준은 US 오픈이 열리는 코스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대회의 개성은 아직 만들어내지 못했다. 마스터스는 화원처럼 예쁜 코스인 오거스타 내셔널에서만 대회를 연다. 그래서 아멘 코너, 호건의 다리, 아이젠하워 나무 등 코스 곳곳에 전설이 서려 있다. US 오픈은 장비 발전에 대항한 골프의 전통과 파(Par)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했다. 최고의 난코스라는 특성도 있다. 미국에선 마스터스를 ‘정상에서의 즐거음(Fun at the Summit)’, US 오픈은 ‘정상에서의 공포(Fear at the Summit)’라고 한다. 디 오픈은 골프 대회의 효시이자 자연이 만든 코스에서 비바람과 맞선다는 특성이 있다.

PGA 챔피언십은 딱히 내세울 것이 없다. 1958년까지 유일하게 매치 플레이로 치러지는 메이저 대회였는데 방송사의 요구로 스트로크 대회로 바뀌었다. 매치 플레이는 무명 선수 두 명이 결승을 치르거나 경기가 맥없이 일찍 끝나는 등 TV 관점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빈번히 생겼기 때문이다. 스트로크 대회에서는 우승권에서 멀어진다고 해도 빅스타 상당수가 코스에 남아 있고 그들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러나 매치 플레이에선 타이거 우즈라도 64강전에서 떨어지면 집에 가야 한다. PGA 챔피언십이 다시 매치 플레이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TV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찾을 수 있는 PGA 챔피언십의 특성이라면 클럽 프로들이 대거(2006년부터는 20명) 대회에 나온다는 것이다. PGA 챔피언십의 주최자인 미국 PGA(Pro Golfers Association)가 클럽 프로, 티칭 프로들의 단체이기 때문에 회원들에게 티켓을 준다.

일반적으로 클럽 프로는 투어 프로가 되려다 실패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대회에 나오면 투어 프로 20명이 PGA 챔피언십에 참가할 수 없다. 그래서 투어 프로들은 PGA 챔피언십에 호의적이지 않다. 두 오픈 대회에 비해 PGA 챔피언십이 저평가되는 이유 중 하나다. PGA는 이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 클럽 프로 20명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최대한 뛰어난 선수들을 참가시키려고 노력한다. 세계 랭킹 100위 이내의 선수들은 초청을 통해서라도 거의 대회에 나온다.

PGA 챔피언십을 제외한 메이저 대회 3개는 아마추어가 운영한다. 마스터스는 아마추어인 오거스타 내셔널 클럽의 회원들이, US 오픈은 역시 아마추어로 구성된 미국골프협회(USGA)가, 디 오픈은 로열&에인션트(R&A) 골프 클럽이 운영한다. R&A는 오거스타 내셔널처럼 본질적으로 아마추어들의 모임이다.

그러나 투어 프로들은 유일하게 프로들이 만든 PGA 챔피언십에 심드렁했다. 투어 프로들은 PGA 챔피언십을 운영하는 클럽 프로들을 한 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고 PGA와 PGA 투어의 갈등도 있기 때문이다. PGA 투어로 독립하기 전 투어 프로들은 클럽 프로들이 중심이 된 PGA가 투어 프로들을 이용해 배를 불린다고 여겼다. 68년 투어 프로들은 PGA에서 독립해 PGA 투어를 만들었다. PGA 챔피언십의 주최권은 PGA가 그대로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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