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입맛 맞춰 변신 성공 꿋꿋이 살아남은 토종 브랜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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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4면

말표 고무장갑, 말표 구두약, 무궁화 빨랫비누….

한 시대 소비재 시장을 풍미하면서, 중년들에게는 아스라한 추억으로 남은 '그때 그 브랜드'들이다.

이들은 변화하는 시장 흐름 속에서 나름대로 변신 노력을 해 아직도 해당 시장에서는'강자'로 남아 있다. 이들 추억의 브랜드의 생존 비법은 무엇일까.

◇'구닥다리' 이미지 벗기(태화라텍스)=1970~80년대 주부들의 사랑을 받았던 태화라텍스의 '말표' 고무장갑. 76년 설립된 태화는 밴드를 이용해 팔에서 흘러내리지 않도록 설계한 제품이 히트를 치면서 고무장갑 시장의 '지존'에 등극했다.

한때 시중에 나와 있는 고무장갑 두 개 중 하나는 말표일 정도로 인기를 끌던 태화에 위기가 닥친 것은 90년대 초. 시장은 정체됐는데다 '마미손'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면서 독보적 위치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때 2백명에 이르던 태화의 생산인력은 현재 1백40명으로 줄었고, 전성기 1백50억원에 이르던 매출도 80억~90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같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태화는 95년 대대적인 기업이미지 통합(CI)작업을 단행했다. 저급 이미지를 주던 말표 브랜드를 버리고 '태화 고무장갑'으로 브랜드를 통일하는 한편 고무장갑 이외에 비닐장갑도 만들기 시작했다.

태화의 변신 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홈페이지(www.THL.co.kr)다. 98년 전면 개편한 홈페이지는 주부 상대의 커뮤니티 기능을 갖췄으며 풍부하고 세련된 콘텐츠를 자랑한다. 온라인 판매 등으로 마케팅에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유종훈 기획실장은 "값싼 중국산 고무장갑의 범람에도 태화는 잘 버티고 있는 편"이라며 "외식문화 확대와 함께 늘어난 업소용 수요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품 다변화로 승부(말표산업)=과거 웬만한 가정집에 하나쯤은 있던 말표 구두약. 55년 설립된 말표산업의 원래 상호는 태양사였다. 그러나 말표 구두약이 워낙 유명해 회사명까지 바꿨다.

군납으로 크게 성장한 말표산업은 값싼 중국 제품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구두약 시장의 50% 이상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주력제품은 구두약이 아니라 왁스 제품이다.

지난해 매출 1백20억원 중 60%를 건물관리용 왁스에서 올렸고, 구두약은 전체 매출의 25% 정도다.

창업자 정두화 회장의 아들인 정연수(52)사장이 80년대 후반 취임과 함께 추진한 제품 다변화의 결과다.

그는 이 무렵 액체나 크림 타입의 구두약도 내놓았다. 현재 생산되는 구두약은 10여종에 생산량이 월 1백50만개 정도다.

최근에는 한국존슨프로페셔날 및 ㈜옥시와 업무제휴를 하는 업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대기업 틈새에서 꿋꿋이(무궁화)=70년대 가장 반가웠던 선물은 빨랫비누였다. 빨랫비누의 대명사 무궁화는 여기서 시작해 미용비누·주방세제·화장품·치약 등 종합 생활용품 회사로 성장했다.

47년 서울 서소문동에서 창립한 ㈜무궁화는 '고형세탁비누'라 부르는 사각형 빨랫비누 시장에서 아직도 6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세탁기 보급에 따른 가루세제의 확대로 한때 매출 중 80%를 차지하던 빨랫비누는 40%대로 떨어졌다. 90년대 초 창업주인 고 유한섭 회장의 뒤를 이은 아들 유성수 사장은 취임 직후 본격적으로 제품 다각화를 시작했다.

빨랫비누 후속으로 파워브라이트와 백의민족 등 가루세제를 내놓았다. 자연미인·스코랑 등 화장비누는 애경·LG생활건강·태평양 등 쟁쟁한 대기업 틈바구니에서도 업계 3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엔 할인점을 중심으로 유아용 생활용품 '헬로 키티'브랜드 등이 꾸준히 입지를 넓히고 있다.

에티오피아·탄자니아·앙골라·몽골 등 오지에도 수출한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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