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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잊었나? ‘나의 조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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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은 17세기의 ‘30년 전쟁’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하에 억눌린 체코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쓴 음악적 거사(巨事)였다. 스메타나는 50대에 이르러 청력을 상실해 음악가로서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는 오로지 애국심에 불타는 창작욕으로 이 같은 시련을 딛고 장장 6년에 걸쳐 ‘나의 조국’이란 대작을 완성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압제를 뚫고 일어서려 몸부림친 체코와 청력의 상실을 딛고 대작을 작곡해 낸 스메타나는 결국 둘이 아닌 하나였던 것이다.

#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듣는 내내 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생각했다. 첫 곡 ‘비셰흐라트’를 들으며 떠올린 것은 남한산성의 굴욕과 저항의 역사였다. 비셰흐라트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 남쪽의 블타바(몰다우)강 동쪽 기슭에 자리 잡은 성이다. 스메타나는 그 성을 배경으로 체코의 치열한 역사를 하프의 선율에 실어 파노라마처럼 펼쳤다. 둘째 곡 ‘블타바’는 체코의 젖줄 블타바가 두 개의 수원(水源)에서 출발해 숲과 들 사이를 지나 프라하로 흘러드는 역정처럼, 역경 속에서도 면면히 흘러온 조국의 역사를 선율에 담았다. 이 곡을 듣는 내내 한강이 떠올랐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어우러져 하나 된 한강! 그 한강이 유유히 흐르듯 우리의 조국도 흘러왔다.

# 셋째 곡 ‘샤르카’는 체코의 전설에 등장하는 여전사의 이름이다. 스메타나는 샤르카를 통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압제에 대한 복수를 꿈꿨으리라. 그 셋째 곡을 들으며 진주 남강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투신했던 논개(論介)가 떠올랐다. 그리고 넷째 곡 ‘보헤미아의 숲과 들에서’를 들으며 60년 가까운 금단의 땅 비무장지대를 떠올렸다. 스메타나가 피비린내 나는 복수와 살육의 흔적들을 보헤미아의 광활하고 아름다운 숲과 들의 선율로 정화했듯이 6·25 동족상잔의 그 피 튀기고 애절했던 흔적과 상처들을 비무장지대의 울창한 숲과 들이 덮고 치유하는 것을 상상했다. 다섯째 곡 ‘타보르’를 들으며 동학란 당시 전봉준의 근거지인 고부를 떠올렸다. 스메타나가 15세기의 종교개혁가 얀 후스의 근거지인 타보르를 음악적으로 형상화해 민족의식과 국가의식을 고취했듯이 말이다. 마지막 여섯째 곡 ‘블라니크’를 들으며 휴전선 155마일 곳곳에 잠든 국군의 혼령을 깨우는 꿈을 꿨다. 스메타나가 블라니크 산에 잠들어 있는 후스파(派) 전사들을 깨워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대곡 ‘나의 조국’을 마무리했듯이!

# 시인 모윤숙은 말했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고.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 57년 전 7월 27일 정전(停戰)협정이 체결되던 그 더운 여름날 지금의 휴전선을 따라 총성은 그쳤어도 이 산하 곳곳에서 죽어간 국군의 외마디는 되레 살아서 메아리쳤다. 그들의 외마디 속엔 죽음으로 지켜낸 ‘나의 조국’이 있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오늘을 사는 우리에겐 과연 목숨 바쳐 지켜내고 살려야 할 ‘나의 조국’이 있기는 한 것인가. 우리는 벌써 그 외마디에 담긴 조국의 절실함을 잊었나?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이 그토록 절절하게 내게 다가왔던 까닭이 여기 있었다.

정진홍 논설위원

※알려드립니다: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칼럼이 온라인 상에서 한동안 '금융 분야에서 역사적 개혁안을'이란 제목으로 잘못 입력된 채로 나가 '잊었나? 나의 조국!'으로 바로잡았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혼선을 초래한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