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총장, 로켓포 맞을 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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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일행이 간발의 차로 아프가니스탄 반군의 로켓포 공격을 피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0일(현지시간) 아프간 수도 카불 국제공항에서다. 카불로 가기 직전 유엔 전용기 앞유리에서 발견된 균열 때문에 출발이 늦어진 덕에 반군 공격을 모면했다고 반 총장을 수행한 측근이 21일 전했다.

반 총장 일행은 20일 아프간 카불에서 열린 국제회의 참석차 전날 전용기를 탔다. 당일 저녁 연료를 채우기 위해 그루지야 수도 트빌리시에 잠시 착륙했다. 이때 우연히 조종석 앞유리에서 작은 균열이 발견됐다. 그대로 이륙했다간 고공에서 대형 사고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조종사의 말에 출발이 지연됐다.


카불 국제회의는 반 총장을 비롯한 세계 40여 개국 70여 명의 대표가 참석할 예정이었다. 참석자 명단엔 한국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도 끼어 있었다. 더욱이 반 총장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과 회의를 공동 주관하도록 돼 있었다. 이날 회의는 아프간 주둔 미군 철수를 포함해 아프간 미래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발을 동동 구르던 반 총장 일행에게 그루지야 정부가 대체 항공기를 내줬다. 마침 트빌리시 공항에 빈 항공기가 있었다. 이 비행기엔 반 총장과 함께 스웨덴 칼 빌트 외무장관이 탔다.

비행기를 갈아타느라 출발은 40분 늦어졌다. 그런데 막상 카불 국제공항에 착륙하려던 반 총장 일행은 관제탑으로부터 다급한 무전을 받았다. “30분 전 활주로가 반군의 로켓포 공격을 받아 착륙이 어렵다”는 전갈이었다. 공항 활주로에선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카불에서 열리는 국제회의를 방해하기 위해 반군이 공항을 노린 것이다. 반 총장이 탄 비행기는 공중을 4~5회 선회하다 결국 기수를 돌려 인근 바그람 미 공군기지에 비상 착륙했다. 반 총장과 빌트 장관은 미군 보호를 받으며 두 시간을 기지에서 더 기다려야 했다. 반군의 추가 공격 가능성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반 총장 일행은 두 대의 미군 블랙 호크 헬기 호위를 받으며 20일 새벽 4시30분이 돼서야 카불 대통령궁에 도착했다. 1시간30분간 눈을 붙인 반 총장은 바로 카르자이 대통령과 조찬 회동을 한 뒤 그와 공동으로 국제회의를 이끌었다.

특히 반 총장은 오후 2시까지 세계 각국 대표와 11차례 양자 협상을 소화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이날 회의에선 2014년까지 아프간 정부에 국방 및 치안 권한을 이양한다는 합의가 도출됐다. 2014년은 카르자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해로 아프간 주둔 미군이 철수하기 시작하는 2011년 이후 3년의 유예기간을 둔 것이다. 기자회견까지 마친 반 총장은 이날 다시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로 날아가 UAE 외무장관과 저녁 회동을 했다. 이어 21일 오후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도 만났다.

반 총장을 수행한 측근은 “유엔 전용기에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반 총장이 아프간 반군의 표적이 됐을 것”이라며 “간발의 차이로 반군 공격을 모면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 총장은 위급한 순간에도 회의 준비에 몰두했다”며 “애초 예정한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고 덧붙였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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