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술자리서 '비공개'발언 화근 서석재·진형구씨 곤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정치인과 '말'은 불가분의 관계다.정치적 의사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수단이 말이며, 또 그 말 때문에 회복 불능의 설화(舌禍)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이번 민주당 이해찬 의원의 발언처럼 정국의 흐름을 일거에 뒤바꿔놓거나, 자신이 소속된 집단에 엄청난 타격을 안겨주는 '자충수 발언'도 적지 않다.

정치인의 '자충수 발언'이 화근이 되는 경우는 대체로 술자리에서 '비보도'를 전제로 기자들에게 심중이나 기밀을 털어놓은 때다. 워낙 충격적이고 파괴력이 커 결국 보도로 이어진다.

1995년 당시 서석재(徐錫宰)총무처장관의 '4천억원 비자금' 발언이 대표적인 예. 徐장관은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시중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4천억원이 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 발언은 같은 해 박계동(朴啓東)의원의 '노태우(盧泰愚)비자금' 폭로로 이어졌고,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결국 전두환(全斗煥)·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92년 대선 때 김대중(金大中)후보가 당시 盧대통령에게서 20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부수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자충수 발언은 현 정권 들어 잦았다. 특히 권력 핵심에 있는 고위 인사들이 자신의 정보량을 과시하거나 폭탄주 탓에 튀어나온 발언이 많다.

98년 진형구(秦炯九)대검 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 유도' 발언도 정부의 공기업 구조조정 과정에 검찰이 상당한 역할을 했음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폭탄주까지 돈 점심식사 후 나온 취중 발언은 집권 초반 DJ 정권의 도덕성에 타격을 줬다.

秦부장과 당시 김태정(金泰政)법무부 장관의 경질로 사태를 수습했지만 수세에 몰리던 한나라당에 대여 공세의 활로를 터준 셈이 됐다.

정치권에서 내놓기 꺼리는 돈 얘기로 화를 당한 경우도 적지 않다. 98년 보궐선거 직후 민주당의 한 의원이 사석에서 기자들에게 "광명·구로에서 50억원 이상 썼다"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대통령후보는 지난해 민주당 출입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4·13 총선 때 부산에서 원도 한도 없이 (선거자금)써봤다"고 했다가 혼쭐이 났다. 그는 또 '언론사 국유화 발언'에 대한 논란에 휩싸여 곤욕을 치렀다.

이정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