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 패러다임이 바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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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9면

최근 서울대는 논술 부활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2005학년도 대학 입시안을 발표했다. 서울대가 차지하는 비중 때문인지 학생·학부모·교사들이 술렁거리고 있다. 교육부의 정책과도 상반된다는 비판도 있다. 학생들이 만능이 돼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대입시나 교육의 패러다임이 변화고 있다고 본다면 서울대의 정책 변화는 이해할 만하다.

대학들은 작금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학은 산업현장·사회의 수요와는 동떨어진 능력의 학생배출로 인해 산업현장은 물론 당사자인 학생들로부터도 원성을 사고 있다. 또한 자질부족의 수강불능 학생들을 다수 입학시킴으로써 기초교육에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교수들로부터도 문제 제기를 받고 있다. 수요공급측면에서 보면 대입정원이 수험생 수를 초과하고 있고, 향후 10년은 이런 경향이 계속될 전망이다. 이는 앞으로 대학이 단순한 '간판'에서 '질'로 변모하기 위해 몸부림 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그 동안 국내 온상에서 안주할 수 있었던 속칭 일류대학들도 유학 붐과 외국계 대학의 국내진입으로 경쟁력의 시험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더 이상 국내 최고의 입지만으로는 글로벌 시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대학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종래에는 수능이 곧 대입 티켓이었다. 그러나 수능은 난이도 논란으로 변별력을 잃었고, 대학도 더 이상 수능에 의존하지 않고 나름대로 학생선발 방법을 찾고 있다. 이는 교육부 주도의 정책중심에서 각 대학별 자율 체제의 시장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대학들은'수능'이라는 한정된 틀 속에서만 학생을 찾던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로 학생선발에 나서고 있다. 입시시기의 다양화, 계열별 선택과목 다양화, 무시험 전형 등이 그것이다.

학생·학부모의 의식도 변하고 있다. 종래의 수능 절대주의 체제하에서는 교육부의 정책에 따라 학생·학부모가 순응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학생·학부모들은 더 이상 정책에 따라 우왕좌왕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갈 길을 찾고 있다. 조기교육,선수교육,외국어교육,감성교육,해외유학붐 등이 그것이다.

또 다른 패러다임의 변화는 평준화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는 분명히 경쟁의 테두리 속에 있다. 지금까지 교육당국은 애써 이 사실을 외면하거나 경쟁 없는 학교분위기를 유지하려고 해왔다. 초등학교 성적표를 없애거나 고교 평준화 정책을 유지해 되도록 경쟁을 줄이도록 했다. 그렇지만 학부모들은 겉으로는 이에 동조하면서도 음성적으로는 오히려 사교육을 강화해 미래경쟁에 대비하는 이중적 구조를 보여왔다. 최근 강남의 과열된 부동산투기, 이곳의 학습인구증가, 유명학원 집중현상은 이러한 변화를 읽고 있는 학부모들의 경향을 보여준다.

대학들의 자율화 바람은 다소의 문제점은 수반할 수 있겠지만, 다양하고 깊이 있는 교육을 통해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글로벌 인재를 육성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몸짓으로 보여진다. 어차피 사회에서는 '단답'도,'4지선다'도 없다. 학생들을 더 이상 '붕어빵 천재'로 키울 수는 없는 일이다.

*외고는 본지의 논지와 방향을 달리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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