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누가 두물머리를 아름답다 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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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의 시각으로 보면 유기농은 정말 나쁜 사람들이다. “대대로 살아온 농사꾼”이란 주장부터 억지다. 1973년 팔당댐 수몰 때부터 농사를 지은 원주민은 4가구 정도. 태반이 한참 뒤에 비닐하우스를 매입해 이주해온 외지인이다. 하물며 비닐하우스가 들어선 곳은 국유지인 하천부지다. 상수원 보호구역이자 그린벨트다. 땅 주인인 국가가 2년마다 돌아오는 계약 갱신을 해지하면 당연히 나가줘야 한다. 그런데도 외부세력과 합세해 저항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얼마나 유기농을 도와주었는가. 점용료는 수만~수십만원으로 공짜나 다름없었다. 팔당댐 오염을 막는다며 수계관리기금으로 천연 비료를 대주고 친환경 자재까지 지원했다. 서울시가 텃밭 운동을 펼칠 때도 각별하게 신경 썼던 곳이다. 유기농을 위해 대체부지까지 준비했다. 임대료도 평당 2000원으로 비교적 싼 수준이다. 그런데도 보상 거부는 물론 감정평가를 위한 현장조사마저 막고 있다. 정부는 서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기농 입장에선 억울하다. 4대 강 한다고 국토관리청 팀장이 “나가달라”고 통보한 게 끝이다. 정부의 “유기농이 강물을 오염시킨다”는 모욕도 참기 힘들다. 95년 유기농 단지를 만들어줄 때와 딴판이다. 한때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내려와 상추 쌈을 맛있게 먹고 갔다. 직접 거름을 주면서 “유기농이 우리의 미래”라던 그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세계유기농대회’를 유치한 김문수 경기도지사마저 발길을 끊었다.

대체부지를 가 보면 영 마음에 안 든다. 유기농에 중요한 지하수부터 문제다. 맑은 지하수가 무진장 솟아나는 두물머리와 비교가 안 된다. 새 땅이 집에서 차로 10분 이상 떨어진 것도 불편하다. 무엇보다 임대기한 10년이 불안하다. 너무 짧다. 유기농사를 하려면 3년 가까이 농약과 화학비료를 안 쓰고 새롭게 땅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유기농 인증을 받는다. “3년간 땀 흘리다 10년 뒤 쫓겨나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이런 사정을 몰라주는 정부가 야속하다. 유기농의 자존심을 걸고 싸우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갈등을 비집고 외부세력이 들어왔다. 유기농보다 훨씬 많은 수십 개 단체들이 ‘공동대책위’를 만들었다. 투쟁은 가열되고 목표는 분명해졌다. “두물머리 유기농업은 계속돼야 한다”는 논리 아래 “친환경 농업 사수(死守)”의 깃발을 세웠다. 한마디로 4대 강 사업을 접으라는 것이다. 공대위가 전면에 나서자 정부는 난감해졌다. 협상 대신 법적 수순을 밟고 있다. 이대로라면 다음 달부터 강제대집행과 격렬한 충돌은 피하기 어렵다.

현지 사정은 누구보다 현지 주민들이 잘 안다. 이들의 시선은 싸늘해졌다. 한때 유기농을 두둔하다 “해도 너무 한다”는 쪽으로 돌아섰다. “아무리 유기농이 좋다 해도 생태(生態)습지보다 오염이 덜 하겠느냐” “비닐하우스가 한강 접근을 방해하고 그림을 망친다”며 수군거린다. “국가 땅에도 저리 떼를 쓰는데…”라며 혀를 찬다. 자신의 논밭은 절대 안 빌려주겠다는 분위기다. 유기농들도 이런 비난이 곤혹스러운 눈치다. 이제는 대체부지 말고는 갈 데가 없어졌다.

지금은 더 좋은 조건의 대체부지를 찾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을 듯싶다. 아니면 강제대집행과 가열찬 투쟁만 남는다. 두물머리에 서면 어느 한쪽을 편들 생각이 싹 사라진다. 11가구도 설득 못해 밀어붙이는 정부가 싫다. 법적 근거 없이 막무가내로 버티는 ‘공대위’도 마음에 안 든다. 세계유기농대회, 창피해도 안 하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서글픈 건 이런 편싸움이 강물이 합쳐지는 두물머리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누가 이런 두물머리를 아름답다 했는가. TV 드라마에 더 이상 안 나왔으면 한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