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2. 안과 바깥 <6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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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나는 연필과 종이를 꺼내들고 먼저 성냥을 그어 불을 켜서 맨 앞에 아이의 이름과 점수를 확인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비뚤거리며 그런 것들을 간신히 적고는 다시 성냥을 켜고 다음 녀석을 확인했다. 몇 번 손가락 끝까지 타오르도록 어떤 녀석의 이름을 기억하고 쓰기를 되풀이했더니 요령이 생겨서 성냥 한 가치에 두 놈은 기억할 수가 있게 되었다.

-거 누구냐?

등 뒤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손전등을 든 수위 아저씨가 절뚝이며 다가왔다. 그는 손전등을 내 전신에 비추어 보고 앞에 붙은 성적표도 보더니 물었다.

-너 여기서 뭘 하는 거냐?

내가 생각하기에도 빈 교사의 어둠 속에서 불빛이 켜졌다 꺼졌다 하다가 막상 확인해 보니 꼬마 혼자 복도에 서 있었다면 해괴한 생각이 들 법했다.

-석차하구 점수 적어요. 우리 어머니가 적어 오라구 해서요.

그는 손전등으로 내가 손에 쥐고 있던 종이쪽지를 비춰 보았다. 그리고 내 명찰의 이름도 확인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야, 느이 어머니 대단하시구나. 지금이 도대체 몇 신데….

입시를 거쳐서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에 우리는 이사를 했다. 혼자가 된 우리 어머니는 여러 가지 사업도 벌이고 장사도 하면서 아버지가 약간 남겨놓은 재산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아마도 어머니는 새로 집도 짓고 신흥 동네로 가서 시장의 점포 몇 채를 사서 세도 받고 스스로 장사도 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날마다 밤 늦게까지 엎드려 집의 평면도를 그려 보고는 했다. 언덕 위에 땅을 장만해서 새 집을 지었는데 방이 다섯 개나 되었다. 명문의 여고를 나온 누나들은 다시 이름난 대학에 진학을 했고 거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제 힘으로 학교를 다녔다. 어머니는 그 무렵에 사기 비슷한 일을 당한 것 같다. 시장 개설은 늦어졌고 나중에 개설이 되어서도 입주자가 별로 없었다. 점포들을 내놓았지만 사려는 사람은 나서질 않았다. 하여튼 우리는 제각기 방을 하나씩 쓰게 되었는데, 현관에서 왼편으로 돌아가서 복도의 맨 끝에 있는 조용하고 후미진 방이 내 차지가 되었다. 그 시절에 책을 많이 읽게 되었다. 십구세기와 이십세기의 서구 고전들을 다시 찾아서 읽었다. 그리고 소설의 형태를 갖추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노트에 볼펜으로 글을 썼는데 어느 날은 온밤을 꼬박 새우는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학교 갈 걱정에 창문이 훤하게 밝아오기 시작하면 우선 걷어치우고 잠을 잤지만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그냥 꼴딱 밤을 새우고 학교에 갔다. 등교해서 네 시간째까지는 줄곧 졸다가 깨다가를 되풀이하기 마련이었다. 어머니는 뒤늦게 눈치를 채고는 밤중에 느닷없이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와 노트를 검사해 보았다. 그러고는 글 쓰던 것을 빼앗아 갔고 나중에는 나를 마당으로 나오라고 하고는 나 보는 앞에서 노트에 불을 붙였다. 나는 거의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느낌으로 활활 타오르는 노트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연필과 종이를 꺼내들고 먼저 성냥을 그어 불을 켜서 맨 앞에 아이의 이름과 점수를 확인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비뚤거리며 그런 것들을 간신히 적고는 다시 성냥을 켜고 다음 녀석을 확인했다. 몇 번 손가락 끝까지 타오르도록 어떤 녀석의 이름을 기억하고 쓰기를 되풀이했더니 요령이 생겨서 성냥 한 가치에 두 놈은 기억할 수가 있게 되었다.

-거 누구냐?

등 뒤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손전등을 든 수위 아저씨가 절뚝이며 다가왔다. 그는 손전등을 내 전신에 비추어 보고 앞에 붙은 성적표도 보더니 물었다.

-너 여기서 뭘 하는 거냐?

내가 생각하기에도 빈 교사의 어둠 속에서 불빛이 켜졌다 꺼졌다 하다가 막상 확인해 보니 꼬마 혼자 복도에 서 있었다면 해괴한 생각이 들 법했다.

-석차하구 점수 적어요. 우리 어머니가 적어 오라구 해서요.

그는 손전등으로 내가 손에 쥐고 있던 종이쪽지를 비춰 보았다. 그리고 내 명찰의 이름도 확인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야, 느이 어머니 대단하시구나. 지금이 도대체 몇 신데….

입시를 거쳐서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에 우리는 이사를 했다. 혼자가 된 우리 어머니는 여러 가지 사업도 벌이고 장사도 하면서 아버지가 약간 남겨놓은 재산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아마도 어머니는 새로 집도 짓고 신흥 동네로 가서 시장의 점포 몇 채를 사서 세도 받고 스스로 장사도 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날마다 밤 늦게까지 엎드려 집의 평면도를 그려 보고는 했다. 언덕 위에 땅을 장만해서 새 집을 지었는데 방이 다섯 개나 되었다. 명문의 여고를 나온 누나들은 다시 이름난 대학에 진학을 했고 거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제 힘으로 학교를 다녔다. 어머니는 그 무렵에 사기 비슷한 일을 당한 것 같다. 시장 개설은 늦어졌고 나중에 개설이 되어서도 입주자가 별로 없었다. 점포들을 내놓았지만 사려는 사람은 나서질 않았다. 하여튼 우리는 제각기 방을 하나씩 쓰게 되었는데, 현관에서 왼편으로 돌아가서 복도의 맨 끝에 있는 조용하고 후미진 방이 내 차지가 되었다. 그 시절에 책을 많이 읽게 되었다. 십구세기와 이십세기의 서구 고전들을 다시 찾아서 읽었다. 그리고 소설의 형태를 갖추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노트에 볼펜으로 글을 썼는데 어느 날은 온밤을 꼬박 새우는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학교 갈 걱정에 창문이 훤하게 밝아오기 시작하면 우선 걷어치우고 잠을 잤지만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그냥 꼴딱 밤을 새우고 학교에 갔다. 등교해서 네 시간째까지는 줄곧 졸다가 깨다가를 되풀이하기 마련이었다. 어머니는 뒤늦게 눈치를 채고는 밤중에 느닷없이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와 노트를 검사해 보았다. 그러고는 글 쓰던 것을 빼앗아 갔고 나중에는 나를 마당으로 나오라고 하고는 나 보는 앞에서 노트에 불을 붙였다. 나는 거의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느낌으로 활활 타오르는 노트를 내려다보았다.

그림=민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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