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과 서울이 지척…" 즉흥시 낭송 여운형 딸 여원구씨 父親묘소 참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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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과 북의 민간 대표 5백여명이 참가하는 8·15 공동행사(민족통일대회)가 14일 북측 대표단 1백16명의 서울 도착과 워커힐 호텔에서의 환영 공연 및 연회로 사실상 막을 올렸다.

이번 행사는 서울에서 처음 열리는 데다 분단 이래 최대 규모여서 남북 왕래 민간행사에 새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높여주고 있다. 또 서해교전에 따른 우리 국민의 싸늘해진 대북 감정을 누그러뜨려 주면서 남북 당국 간 합의를 보완해줄 화해·협력의 한마당이 될지도 주목된다. 특히 남북 장관급 회담 마지막 날에 북측 대표단이 도착함으로써 14일은 남북 민·관이 함께 하는 드문 날이 됐다.

○…몽양 여운형 선생의 셋째 딸인 여원구(74)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 중앙위원회 의장은 이날 남측의 환영 공연이 열리기에 앞서 서울 수유동에 있는 부친 묘소를 비공개리에 참배했다.

정부는 당초 북측 대표단의 숙소(워커힐 호텔)바깥에서의 활동을 통제한다는 방침이었으나 북측 대표단이 남측의 환영 공연 참관을 거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의장의 묘소 참배를 허용했다. 의장의 묘소 참배에는 북측 수행원 10여명이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참배 문제로 환영 공연이 1시간 이상 지연됐다.

이에 앞서 의장은 남쪽의 사촌동생 여인호씨, 10촌 친척 여익구씨와 처음으로 상봉했다. 의장은 이번 행사기간 중 남측 여성계 대표들과 다음달 중순 남북 여성통일대회 개최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 대표단 1백16명은 이날 오전 10시46분 고려항공 TU154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북측 대표단 가운데 김영대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회장과 장재언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여원구 의장 등 3명이 비행기에서 먼저 내려 마중나온 남측 대표단 관계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들은 흰색 바탕에 하늘색 지도가 그려진 한반도기와 '자주통일' '민족자주'의 구호가 적힌 깃발을 들고 밝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남측 인사에게 "반갑다" "환영해줘서 감사한다"는 등의 인사말을 건넸다.

입국 과정에서 일부 인사는 공항 관계자의 실수로 귀빈실 통행이 차단되자 몸싸움을 벌이며 "도로 북으로 가겠다" "기분 나쁘다" "남측 인사들이 (북에)왔을 때는 이렇게 대접 안했다"며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북측 인사들은 이날 공식·비공식 행사에서 '민족 공조'를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허혁필 북측 민화협 부회장은 도착 직후 낸 성명에서 "남녘 동포들에 대한 뜨거운 혈육의 정을 안고 이곳에 도착했다"며 "이번 8·15 민족통일대회가 민족의 힘을 합치고 6·15 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하며 통일로 나아가는 새로운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북측은 이날 성명서 수십장을 미리 준비해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또 평양예술단의 지국주(23)씨는 "반갑다"고 소감을 밝힌 뒤 "북과 남이 통일전선에 앞장서자"고 말했다.

○…이날 저녁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환영연회에서 남북 대표는 테이블에 섞여 앉아 1년 만에 다시 만난 기쁨을 누리며 얘기꽃을 피웠다.

특히 북측 통일문학 장혜명 편집국장은 "내 나라 하늘길로 왔다/한 동안 반나절도 아닌 단 1시간 거리를 우리는 그동안 가지 못했단 말인가/이제 이렇게 평양과 서울이 지척이 됐다/단숨에 통일을 이루자"는 내용의 즉흥시 '단숨에 가자'를 낭독해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북한 만수대예술단과 평양예술단 소속 여성 무용 배우 30여명은 화려한 색상의 원색 한복 차림으로 숙소인 워커힐 호텔에 도착해 눈길을 끌었다.

짙은 화장을 한 이들 대부분은 높은 굽의 구두를 신었으며 호텔 직원들에게 세련된 매너로 인사말을 건넸다. 이들은 15, 16일 이틀 연속 공연을 할 계획이다.

오영환·고수석·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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