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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계 "분열을 넘어 생산적 共存으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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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우리 지식계의 분열을 극복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가 나와 주목된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 교수가 한국 사회의 진보·보수·중도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의 생각과 주장을 본격적으로 해부하고 나선 것. 그 결과는 『말, 권력, 지식인』(아르케刊)이라는 책으로 곧 출간될 예정이다.

그는 대상 인물을 직접 인터뷰하면서 이번 작업을 진행했다. '이념적 편가르기'로 지식사회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 과정에서 김 교수는 전문적 지식으로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에 기여해온 '관료적 지식인'이 지식인의 자율성을 스스로 훼손해온 반면,'저항적 지식인'은 전문성 부족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방치할 경우 우리 지식 사회는 '권력의 식민지'로 전락, 공론의 규율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김 교수의 변이다.

사실 당대의 역사를 기록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지금 활동하고 있는 지식인을 평가하는 일도 쉽지 않다. 지금까지 개별적인 지식인에 대한 평가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하나의 입장에서 다른 입장을 비판하는 데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김호기 교수 역시 개별 지식인에 대한 평가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는 우선 당파적 입장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선정적인 인물평에 따른 논쟁을 감당하기도 쉽지 않았을 터이다.

먼저 분석한 것은 진보적 지식인 4명.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에 입각해 사회의 물신성을 극복하고 인간적 사회를 추구하는 '진정한 인간주의자' 신영복 (성공회대 경제학) 교수, 민족주의와 진보주의를 결합한 '선비'강만길(상지대 총장 한국사)교수, 서구의 신좌파 정치이론과 한국의 현실을 성공적으로 접목한 '원칙과 용기'의 진보적 정치학자 손호철(서강대 정치학)교수, 진보적 시민운동 이론가이자 '급진 민주주의 좌파' 조희연(성공회대 사회학)교수가 그들이다.

보수주의자로 거명된 인물은 자신의 스승이기도 한 송복(연세대 사회학)교수, 현실주의자로 정의한 이상우(서강대 정치학)교수, 철학적 보수주의와 유교사상을 연결시킨 함재봉(연세대 정치학)교수, 통일의 '방법'에 신중을 기할 것을 주장하는 '방법론적 보수주의' 이동복(명지대)객원교수다. 특히 함교수에 대해선 아시아 지식인에게 숙명적인 '전통의 문제'를 본격 제기했다는 점을 높이 사기도 한다.

김교수가 가장 관심과 애정을 보이고 있는 것은 중도적 입장의 지식인들이다.

대표적으로 중산층 중심의 개혁을 주장한 '자유주의자' 한상진(서울대 사회학)교수,'고독한 이성주의자' 김우창(고려대 영문학)교수, 시장의 실패를 정부가 개입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미시적 케인스주의'로 규정한 정운찬(서울대, 경제학)교수, 자본과 노동의 역사적 타협을 모색한 유럽의 민주주의 프로그램을 정치적 대안으로 꼽아온 최장집(고려대 정치학)교수가 그들이다. 이들에 대한 관심만큼 깊이있는 이론적 분석을 곁들이기도 했다.

김교수는 비판도 빠트리지 않았다. 진보주의에 대한 김 교수의 핵심적 비판은 현실성의 결여에 집중되고 있다. 그들이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남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비판적 도덕성'만으로는 이제 현실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수에 대해선 '철학의 부재'를 들고 있다. 정치적 입장에서 보수적 견해를 가지고 있을 뿐 '그 사상적 정체성이 불투명하다'고 비판한다. 그런 점에서 김교수는 우리 사회에 진정한 보수가 존재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김교수가 '중도'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분열을 넘어선 '제3세대 지식인'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이는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말한 '제3의 길'을 추구하는 지식인 개념과 흡사하다.

그렇다고 중도적인 지식인에 대해 호의적인 것만도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실현 가능한 전략을 추구한다는 점에선 높이 평가하면서도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평면적 절충'을 넘어선,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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