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2. 안과 바깥 <68>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내가 원래부터 반제도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초등학교 육학년의 입시반에서부터 중학 삼년 동안 매달 월말 시험을 치르고 석차 경쟁을 하는 것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거기다 머리는 박박 깎았고 일제 때부터의 교복에 교모를 쓰고 아침 등교시간마다 상급생 규율반과 훈육주임의 선도를 받아야 했다. 매주 월요일에는 학도호국단에 군대식으로 편성되어 사열식을 했다. 내 어린 날의 단상을 보면 그런 나날에 대하여 진저리를 내고 언젠가 제 힘으로 이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헤르만 헤세는 김나지움에서 퇴학을 맞는데 학교 제도의 중압감을 '수레바퀴 밑'이라고 표현했다. 샐린저는 자신을 투영한 홀든 콜필드라는 퇴학 맞은 낙제생 아이를 내세워 차라리 제도 바깥의 어느 벼랑 가에서 아이들이 놀다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일이나 하겠다며 '호밀밭의 파수꾼'이라고 자칭한다. 저 해맑은 얼굴의 소년 랭보는 풀을 빳빳하게 먹인 레이스 달린 옷을 입고 교회로 자신을 끌고 가던 어머니로부터 그리고 학교로부터 달아나 다른 이방 도시를 헤맨다. 앙드레 지드는 너 자신과 집과 학교에서 떠나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석차가 거의 바닥에서 겨우 수십등쯤으로 떨어졌던 중학 이학년 때의 어느 월말고사 뒤에, 어머니는 나를 다시 학교로 쫓아냈다.

-네가 어느 정도나 못했는지 아무런 자각이 없구나.

어머니는 내게 지금 학교로 돌아가서 월말 성적이 발표된 전체 석차 삼십등까지의 아이들 점수와 이름을 적어 오라는 것이었다. 이미 주위는 컴컴해진 저녁때였다. 배도 고프고 한 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왔는지라 방바닥에 활개를 펴고 잠깐이라도 눕고 싶을 정도로 피곤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려면 전차나 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야만 했다. 효자동 전차 종점에 도착했을 때에는 육상궁의 담벽이 시커먼 어둠에 싸인 밤중이었다. 철제 교문은 잠겨 있었고 수위실의 불은 켜져 있었지만 상이용사 아저씨는 어디로 순찰이라도 돌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컴컴하게 불이 꺼진 채 무슨 괴물처럼 서 있는 삼층 벽돌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학교 앞의 구멍가게로 다시 나와서 성냥 한 갑을 샀다. 성냥을 살 생각은 해냈으면서도 왜 그때 초를 한 토막 살 생각은 못했는지 그날 기억을 할 때마다 아쉬웠다. 그 무렵에는 아직은 어디로 가야 담을 타넘기 좋은 장소를 발견할 수 있는지 몰랐다. 간신히 수영장 쪽의 담장에 손수레가 기대어져 있는 걸 보고는 그것을 타고 담 위에 올라섰고 후들거리는 두 발을 진정시키고 나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시멘트에 넘어지면서 떨어졌는데 두 손을 잘못 짚어서 손바닥이 까졌다. 혀로 까진 상처를 핥아내면서 수영장을 지나 철문을 밀어 보니 슬그머니 열리는 게 아닌가. 드디어 중학교 건물의 본관 교무실 앞에 이르러 길게 붙여놓은 성적표 앞에 가서 섰다. 등사로 찍은 이름과 점수와 석차가 길게 이어져 있었고 아마 내 이름은 저 기다란 종이의 행렬 끝자락쯤에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글쎄, 어떤 녀석도 학교 당국의 이런 쓸데없는 짓에 대하여 그저 떼어내거나 찢어버리는 작은 저항도 감행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림=민정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