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나래 펴준 추억속 동네 책방들 지금 모두 어디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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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작은 책방』(길벗어린이)이란 책이 있다. 번듯한 책꽂이에서 쫓겨난 온갖 책들이 떠돌이처럼 모여있는 작은 책방에서 한 아이가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고 있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는 작은 책방이 열어 준 마법의 창으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닌 다른 세계와 시대를 들여다 볼 수 있었어. 그것은 시와 산문, 사실과 환상의 세계였지. 거기에는 옛 희곡과 역사극, 기사들의 모험담이 있고, 미신과 전설 그리고 '문학의 골동품'이라 불리는 작품들도 있었어."

작가인 엘리너 파전은 이 작은 책방에 틀어박혀 허구와 사실, 공상과 현실 세계를 오갔다고 회상하고 있다. 책으로 다른 시대 속으로 들어가보는 게 어디 엘리너 파전뿐이겠는가?

지난해엔가 책과 관련된 텔레비전 프로를 보았다. 영화 관계 일을 하는 사람들이 책과 자신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신의 상상력은 어린시절 동화책에서 비롯되었다는 스티븐 스필버그, 수세기에 걸쳐 축적된 고전을 읽는 게 중요하다는 제임스 카메론… 일본 애니메이션 '디지몬 어드벤처'를 만든 프로듀서는 어린시절 책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했다면서 그것은 기억의 서랍을 하나씩 열어서 꺼내 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15소년 표류기』, 북유럽이나 그리스·일본 신화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것이다.

구구절절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은 서점과 관련된 우울한 소식들 때문이다. 골목에서 서점들이 사라지고, 그나마 남아 있던 작은 서점들은 변방으로 쫓겨난다. 작은 책방조차 되지 못하는 그저 그런 서점이기 때문에 아쉬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이 동네 서점이든, 집안 서재이든, 학교 도서관이든, 작은 책방 같은 곳이 있다면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도록 지키려는 마음도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소중하게 지키듯이.

광명에는 작은 어린이 책방이 있다. 십여 년 동안 그 자리에서 꿋꿋하게 버텨온 곳이다. 이 책방은 장사가 안 된다는 것 외에도 또 다른 시련이 있다. 주변에서 이 작은 책방을 어떻게 하지 못해 안달인 것이다. 시내 중심가, 목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허구헌날 부동산업자들에게 전화가 온다. 권리금도 듬뿍 줄 테니 팔라는 것이다. 몇 해째 거절하자, 처음에는 도대체 얼마를 받으려고 그렇게 버티냐고 비아냥거리더니, 이제는 미친 여자라고 소곤거린단다. 그들의 입장은 그렇게 목 좋은 자리에서 이렇다 할 매출을 올리지 못하는 데도 팔지 않고 버티는 건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살이의 기준을 경제적 가치에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발레를 좋아하고 아직도 그 무언가를 놓지 않는 책방 주인은 술집들로 포위된 그 중심가에서 오늘도 문을 열고 있다. 엘리너 파전의 작은 책방을 꿈꾸며.

<어린이 책 전문서점 '동화나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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