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 정치'… 흠집내기 막말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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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통령 탄핵, 국기 문란, 정권 퇴진,청부 기자회견, 조작극, 사주, 작태, 폭거….

헌정 중단 상황에서나 등장할 만한 섬뜩한 용어들이 여의도에 난무하고 있다. 각당의 정책 경쟁이 실종된 가운데 '상대방 흠집내기'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정국의 분수령이 될 8·8 재·보선을 코 앞에 둔 데다 12월 대선의 기선 잡기 신경전까지 겹친 탓이다. 막말이 양산되는 토양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2일 험구(險口)공방은 김대업씨의 기자회견으로 불거진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은폐 의혹에 이르러 고조됐다.

"전과 6범의 사기 전문가인 金씨의 청부 기자회견" "이 정권엔 조작극을 사주해 온 배후세력이 있다"(姜在涉 정치공작진상조사특위 위원장)는 한나라당의 반박이 나왔다. "음해를 사과하고 정권 내부의 공작 전문가를 엄벌치 않으면 국정 농단의 책임을 물어 대통령 탄핵과 정권 퇴진을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姜위원장은 맞불을 놓았다. "전과자와 짜고 치는 비열한 정치공작"(金榮馹 사무총장)이라고 주요 당직자들이 가세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 법사위 위원들이 '병역비리 은폐 의혹' 수사와 관련해 검찰청을 항의 방문한 것을 집중 공격했다. 유용태(劉容泰)사무총장은 "검찰에 압력을 행사한 초유의 국기 문란사건"이라고 성토했다. "이런 당이 정권을 잡으면 못할 짓이 없다"(林采正 정책위의장), "황당무계한 폭거"(柳宣浩 시민사회특별위원장)라는 발언이 이어졌다.

민주당은 한나라당 소속인 함석재(咸錫宰)법사위원장의 사퇴를 공식 요구했다. 그러면서 "사퇴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박관용(朴寬用)국회의장이 주재하는 회의에는 불참하겠다"(확대간부회의)고 으름장을 놓았다.의장이 한나라당 당적을 버린 데다 법사위원장 사퇴와 무관하다는 점에서 '뜬금없는 공세'라는 지적이 나왔다.

양당은 총리 공백의 국정 혼란을 걱정하고 추스르기보다 인준 부결의 책임 전가에 급급했다. "민주당 한화갑(韓和甲)대표가 표결 하루 전 백지 신당론을 주장한 속셈은 다른 데 있다"(徐淸源 한나라당 대표), "徐대표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유치한 거짓말을 중단하라"(李洛淵 대변인)는 말이 오갔다.

◇네거티브 캠페인(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형성 전략) 항상 이득인가=한국사회과학 데이터 센터의 이현우(李賢雨·정치학 박사)연구위원은 "양측이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일관한다면 혐오감을 주고 '투표율 저하'로 이어져 부동층 공략이 절실한 쪽에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李위원은 "정치 통계상 거짓으로 확인될 경우 의혹을 제기한 측은 반드시 손해를 보는 부메랑 효과가 나타난다"고 했다.

경희대 임성호(林成浩·정치학)교수는 "미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 이후 네거티브 캠페인 자체가 식상함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조심스러운 접근을 하지 않으면 '또 저런 전략이구나'라는 냉소를 받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林교수는 "지루한 네거티브 캠페인보다 민생·경제에 대한 노력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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