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소득1%사회기부를:기부금 稅制혜택 크게 늘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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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주한 영국대사관·기업체 주재원 부인 3백여명의 친목모임인 영국 부인회는 2년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평균 1천2백만원씩 기탁했다. 매춘여성 재활 등 여성복지에 써달라는 당부를 곁들였다. 모금회의 김효진 과장은 "일부러 돈을 거두는 게 아니라 한달에 한번꼴로 열리는 친목모임 때 조금씩 아낀 경비를 모아 낸다는 점에서 대기업의 몇억원씩 하는 기부금 못지 않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기부와 자원봉사 등 사회공헌 활동의 중요성이 최근 부쩍 강조되고 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터여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글로벌·디지털 시대는 부(富)가 상위 20% 계층에 편중되는 '2:8 사회'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 심해졌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정문건 전무는 "나눔의 문화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빈부격차 해소와 사회통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시장경제는 빈부격차 해소에 큰 역할을 못한다. 그렇다고 정부가 부의 재분배를 주도하면 경제활동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런 딜레마를 '나눔의 문화'가 극복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큰손·일회성 위주=우리나라의 기부 주체는 여전히 대기업·공공기관·사회단체 같은 '큰손' 위주다. 보건복지부 산하로 국내에서 유일한 법정 모금기관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난해 모금한 실적만 봐도 그런 경향은 뚜렷하다.

전체 모금액 6백35억원 가운데 일반인의 온정은 22%에 그쳤다. 나머지 78%는 법인의 몫이다. 기업체 54%, 사회·종교단체 18%, 공공기관 6% 등이다.

개인 성금이 80%에 가까운 미국 등 구미 선진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교인들의 헌금이나 시주와 같은 기부금이 통계에 제대로 잡히지 않기는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개인 차원의 기부문화는 한참 멀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가족 본위의 유교문화가 강한 데다▶종교단체 이외엔 뚜렷한 기부운동을 할 소규모 공동체가 적고▶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남을 도울 만한 물적·정신적 여유가 없다는 점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우리나라의 기부금 모집이 일회성에 그치는 관행도 문제다. 국내 모금의 70% 이상이 연말연시 두달 동안에 몰려 있다.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추진하는 모금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모금이 더 잘 된다.

매스컴이 요란스레 독려하는 수재 의연금 캠페인, 눈물겨운 사연을 곁들인 지상파 방송의 모금 실적이 다른 행사를 월등히 앞선다. 모금행사가 즉흥적이고 이벤트성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법과 제도가 국민의 기부 의식을 뒤따르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모금단체를 관할하는 법의 이름은 '기부금품 모집 규제법'이다. 이름부터 '장려'가 아닌 '규제'다.

속을 들여다 봐도 ▶모금 행사 전에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모금을 하는 데 드는 경비는 모금액의 2%를 넘을 수 없다▶기부업체의 손비(損費) 처리는 소득금액의 5%밖에 안된다 등등이다. 자선단체가 난립했을 때 만든 규제라지만 선진국에 비해 너무 엄격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기부를 과시·생색의 수단 쯤으로 여기는 풍토도 여전하다. 수년 전 신문사들이 수재의연금을 낸 사람의 이름을 지면에 게재하지 말자고 결의하자 이듬해 모금 실적이 뚝 떨어졌다.

◇개선방안은=기부문화의 확산에 걸림돌이 되는 제도와 관행을 고쳐야 한다.

기업체들도 기부를 경영전략의 하나로 생각할 때다.

모금 전문인 인터넷 사이트 도움넷의 최영우 대표는 "기부자들의 욕구가 다양한 만큼 정부도 다양한 모금단체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며 "대신 사후감독을 강화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제 면에서 획기적인 유인책을 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공익단체에 대한 기부금에 세제혜택을 주는 금액은 개인의 경우 소득의 10%, 법인은 5%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은 개인이 50%, 기업이 10%에 달하고 일본은 개인과 법인 모두 25%다.

자원봉사 활동을 장려하는 유인책도 필요하다.

전북대 홍경준(복지행정학)교수는 "자원봉사진흥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부금의 큰손인 대기업들은 기부가 장기적 투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주도면밀한 기부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서울대 신유근(경영학)교수는 "국내 기업들의 기부방식은 전략과 효율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기업주보다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는 쪽을, 종업원과 고객들이 함께 참여하는 모금 행태를 지향할 때"라고 말했다.

일본 소니는 한해 사회공헌 활동에 4백억엔을 들였으며, 기업이 이로 인해 얻은 유·무형 이득이 이를 웃돌았다는 백서를 2년 전 냈다. 경영학의 비용·편익 분석을 자선사업에 도입하려는 과학적 시도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상민 박사는 "사회공헌 활동을 전담하는 부서를 두고,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며 "자원봉사 활동시 유급휴가를 주는 제도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부=김영욱·홍승일·김창규 기자

◇도움말 주신 분=강석창(소망화장품 사장) 김효진(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과장) 박동한(국제사랑의 봉사단 대표) 박종규(전경련 사회공헌팀장) 박필규(제일제당 사회공헌팀 주임) 방대욱(아이들과 미래 과장) 신유근(서울대 교수) 이경상(신세계 경영지원실장) 이병욱(전경련 부장) 이상민(삼성경제연구소 박사) 정문건(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최영우(도움넷 대표) 홍경준(전북대 교수) 황정은(삼성사회봉사단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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