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박찬숙이 식초회사 사장됐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왕년의 농구스타 박찬숙(42)씨에게서 시큼한 식초 냄새가 났다. 경남 사천에 있는 식초공장에 다녀오느라 그렇다고 했다.

박찬숙씨는 '유정원'이라는 식초회사 사장이다. 우리 농산물을 전통식으로 발효시켜 감식초 등을 만들다 최근엔 식초로 만든 주방용·세탁용·목욕용 세제를 출시, 사업을 확장했다.

박씨는 "마흔이 넘어도 탱탱한 내 피부는 특허를 받은 이 미용식초 덕"이라며 자랑이 대단했다. 십여년간 과일식초를 연구한 친척의 권유로 사업을 시작했고, 화장품 회사 태평양에서 오랫동안 뛴 덕에 사업영역을 세제쪽으로 넓혔다.

유정원의 로고는 농구공을 본떠 만들었다. 사업을 하게 된 계기도 농구 때문이다.

"여자프로농구를 시작했는데 여자라고는 선수 하고 치어리더밖에 없더라고요."

남자들이 여자농구를 장악한 탓에 남자 대학 파벌 다툼이 여자농구계에까지 미치고 정작 주인인 여성 선수들은 소외됐다는 것이 박씨의 설명이다.

1998년 여자프로농구 초창기 "왜 여자 심판이 없느냐"고 항의했더니 한 간부가 "그럼 네가 심판해라"고 했다고 한다. 남자 스타 선수는 은퇴 후 심판을 하지 않는다.

박씨는 "남자농구 스타는 은퇴하면 구단에서 외국으로 코치 연수를 보내주는데 왜 국제 경쟁력이 뛰어난 여자 선수들은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서 악착같이 돈을 벌어 여자농구의 주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여자프로농구연맹(WKBL) 총재가 되겠다"고 당당히 말한다. 머리를 짧게 깎고 사우나에서 윗몸일으키기를 하면서 남자처럼 씩씩하게 살고 있다.

농구계를 완전히 떠나있지는 않다. 사업가 이외에도 주부, 두 아이의 엄마로 보내는 바쁜 시간을 쪼개 매주 한두차례 경기 감독관을 하고 있다. 연맹 회식자리에서 쭈뼛거리는 선·후배들을 상석으로 앉히는 박씨의 모습도 가끔 눈에 띈다.

최근 여자농구엔 유영주(국민은행)감독대행과 정미라(삼성생명)코치가 자리를 잡았고, 심판 15명 중 여자가 다섯명이다. 괄괄하고 목소리 큰 박씨가 아니었다면 여자농구에서 여성의 참여는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었다.

성호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