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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나라하다 못해 초라한 몸뚱아리, 그것은 인간의 껍질일 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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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호 04면

1 Working at Night (2005)Photographie - 56.7?6cm ?David Dawson, courtesy of Hazlitt Holland-Hibbert, Londres

2008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Benefit Superviosr(Big Sue)’라는 작품이 3360만 달러에 팔리면서 루치안 프로이트는 생존 작가 중 작품 가격이 가장 비싼 작가로 기록됐다. 수 텔리라는 여인을 모델로 그린 이 그림에선 거대한 몸집의 여인이 벌거벗고 누워 잠을 자고 있다. 몸의 살덩어리들은 소파를 꽉 채우고 넘쳐 바닥에 닿을 듯하다. 이 그림에 거액을 지불한 사람이 러시아의 억만장자인 로만 아브라모비치로 알려지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파리 퐁피두센터서 19일까지 열리는 생존 최고 화가 루치안 프로이트전

이러한 시장에서의 성공을 떠나, 평론계 역시 프로이트를 생존 최고의 화가로 조명하고 있다. 올해로 88세를 맞은 프로이트는 독일 태생이며 『꿈의 해석』 등의 저서로 유명한 심리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족들이 영국으로 이민을 온 뒤 평생 영국에서 작업하고 살아왔다. 그는 프랜시스 베이컨 다음으로 영국 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프로이트는 1945년 처음 베이컨을 만났는데, 후에 둘은 70년대에 ‘런던 스쿨’(School of London, 구상 회화를 추구했던 일련의 영국 화가들)의 주요 작가가 됐다.

2 Large Interior, Notting Hill(1998) Huile sur toile, 215.1?68.9 쯕hotography by John Riddy 쯐ucian Freud

이런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막바지 열기를 내뿜고 있다. 그는 프랑스인들에게는 그다지 알려진 작가는 아니었다. 프랑스에서 그의 개인전을 주최한 것은 87년 역시 퐁피두센터였지만 그 전시는 평론가와 대중 모두에게서 혹평을 받았다. 이후 90년 남프랑스의 생 폴 드 방스에 위치한 마게 재단(Fondation Maeght)에서 있었던 ‘베이컨/프로이트; 표현 (Bacon/Freud; Expressions)’이라는 전시를 통해 프로이트의 작품 세계는 프랑스인들에게 비로소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대표작 50여점 전시
‘아틀리에(Atelier)’라는 제목의 이번 퐁피두 전시에서는 프로이트의 대표작 50여 점이 전시됐다. “아틀리에에서 모델을 앞에 두고 작업했던 올드 마스터들의 사실주의적 표현과 구상 회화의 전통을 기리는 의미에서 아틀리에라는 제목을 선택했다”는 것이 전시 큐레이터인 세실 데브레이(Ccile Debray)의 말이다. 평론가 장 루이 걀망이 “프로이트에게 아틀리에는 인간들, 동물들, 사물들의 존재와 부재가 뒤섞이는 본질적인 장소”라고 말했듯, 아틀리에는 프로이트에게 창작의 장소이며 삶의 공간이다.

3 After C39zanne39 Oil on canvas, 214?15 cm Photo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Canberra 쯐ucian Freud

이번 작품들에는 닫힌 공간 속에서 프로이트와 마주하며 포즈를 취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들은 침대나 소파, 혹은 바닥에 적나라하게 벗은 모습을 드러내면서 앉아있거나 누워있다. 대상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이 잘 아는 주변 사람을 주로 모델로 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도 계속 대화를 하면서 모델의 실체를 담고자 한다.

초현실적 분위기 물씬
프로이트는 “나는 물감이 마치 살인 듯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 물감은 바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물감을 두껍게 바르고, 혹은 거친 붓터치 자국을 남기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대상의 생명감을 끌어낸다. 특히 누드를 그릴 때는 대상의 육체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데, 적나라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몸뚱어리들은 인간에게 그저 껍질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내가 인간에게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바로 인간의 동물적인 면이다. 그래서 나는 벌거벗은 인간들을 그리기를 좋아한다. 나는 사람도 동물처럼 육체적으로 자연스럽고 편안해지길 바란다.” 그가 누드를 그리는 이유다. 동시에 그림 속에 등장하는 동물이나 침대·장롱·화분·의자 등 오브제들의 기이한 배치는 그의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인 독특한 구도와 함께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부여한다.

프로이트는 유명인의 초상화를 그리지 않는데, 예외적으로 영국 여왕과 모델 케이트 모스를 그렸다. 케이트 모스의 초상화는 2002년 케이트 모스가 한 패션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프로이트의 모델이 되고 싶다고 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케이트 모스는 임신 중이었다. 프로이트는 잡지 커버에서 보는 화려한 수퍼 모델의 모습 너머의 진짜 케이트 모스를 표현하고자 했다. 침대 가장 자리에 나체로 누운 채 한 팔을 베개 위에 올려놓고, 벌린 다리를 길게 뻗고 있는 케이트 모스의 모습은 짙은 화장과 멋진 옷을 입고 인공적인 포즈를 취하는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며, 일상을 살아가고, 단란한 가족을 꿈꾸면서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는 평범하고 소박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렘브란트·피카소처럼 자화상 많아
프로이트는 올드 마스터들의 그림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철저하게 자신만의 그림 세계를 창조해낸다. 세잔의 ‘세 여신’이라는 그림에서 빌려온 구도로 그린 ‘세잔 이후에’는 세잔의 그림에서와 같은 낙원은 없으며, 모델들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지도 않는다. 모든 미적이고 이상적 요소들이 배제된 이 그림은 철저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불편함을 안겨주기까지 한다. 이러한 불편함과 복잡한 심리적 유추들로 인해 그의 그림들은 무한히 열려 있게 된다.

“나는 내가 죽는 날까지 자화상을 그릴 계획이다”라고 말한 프로이트는 렘브란트나 피카소처럼 자신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전시된 자화상 중 하나를 보자. 나이가 들어 주름투성이의 얼굴과 몸을 한 그가 한 손에는 붓을, 한 손에는 팔레트를 들고 있다. 비록 쇠잔해진 몸을 가지고 있지만 붓과 팔레트를 든 노화가의 팔에 힘찬 힘줄이 서 있다. 일생 동안 그림을 그려야 하는 운명을 타고나 죽는 날까지 붓을 놓지 않을 이 노화가의 자화상 앞에서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노화가의 새로운 작품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최선희씨는 런던 크리스티 인스티튜트에서 서양 미술사 디플로마를 받았다. 파리에 살면서 아트 컨설턴트로 일한다.『런던 미술 수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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