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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없는 지도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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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달고 물이 많은 우리 먹골배를 미국에 옮겨 심으면 돌배 밖에 안 열린다. 나무는 똑같으나 이를 키우는 풍토가 다르기 때문이다. 제도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 나라의 제도가 다른 나라로 이식될 때 그 다른 풍토 때문에 그 제도의 본래의 목적이나 기능이 왜곡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인물 검증, 혹은 인사청문회라는 제도가 도입됐다. 공직에 참여할 인물들을 사전에 검증함으로써 부적격자, 자격미달자가 저지를 수 있는 폐해를 막아보자는 이 제도의 취지는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식된 이 제도가 과연 본래의 목적과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의 인물검증이라는 것을 보면 먹골배가 돌배가 되듯이 이 제도가 우리 풍토에 의해 변질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인물검증을 한다면 제일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 재산이다. 어떤 인물이 재산이 조금 많으면 정재(淨財) 여부를 떠나 무슨 큰 흠이 되는 것처럼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장상 총리지명자 역시 마찬가지다. 두 부부가 육십이 넘게 평생 교수로서 재직하면서 십몇억의 재산은 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두사람 월급 중 한사람 분만 쓰고 나머지는 모았다고 했다. 그런데 "아니 교수가 어떻게 그런 돈을…"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강남 아파트의 위장 전입 문제도 그 일환으로 보인다. 그가 몇천만원을 주고 사놓았다는 땅이 투기냐 아니냐, 왜 아파트 벽을 뚫어 두채를 쓰느냐는 데까지 시시콜콜 물고 늘어졌다. 만일 알뜰하게 모은 재산을 투기로 몰았다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 일이겠는가. 물론 위장전입까지 해가면서 재산을 늘렸다면 문제가 있다. 그러나 본인이 부인하는 문제니만큼 다시 규명돼야 할 문제다. 우리 청문회가 이렇게 재산문제 위주로 치닫는 데는 우리 사회의 지나친 평등주의적 풍토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재산이 조금 많으면 무조건 의심하는 풍토에서 건전한 자본주의가 어떻게 뿌리 내리겠는가.

국적문제도 마찬가지다. 본인의 국적이라면 모르겠으나 유학 중에 낳은 자식이 이중 국적자라 하여 비애국자로 몰아붙인다. 입으로는 세계화를 외치고 히딩크를 배우자고 하면서 국적문제만 나오면 눈에 불을 켠다. 외국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을 일을 우리만 과민한 이유는 우리 속에 폐쇄적인 민족주의 피가 면면히 흐르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끼리만 똘똘 뭉치고 조금만 튀거나, 다르면 왕따 시키는 그런 풍토가 국적문제로 불거지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우리가 지나치게 평등지향적이고, 폐쇄적이니까 인물검증을 해도 결국은 그 문제만 물고 늘어진다.

인물검증, 인사청문회는 달라져야 한다. 격이 높아져야 한다. 먼저 사람을 아끼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따뜻한 마음을 갖느냐, 질시에 찬 차가운 눈을 갖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 보인다. 흠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저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성장한 그 인물을 아껴야 한다. 명백한 범법이나 위법이 아닌 한 보통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 대해서는 관대한 마음을 갖자.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는 잘 용서하면서 왜 상대에 대해서는 눈을 부라리며 정죄(定罪)하려 드는가.

한번의 잘못이 있었다 해도 그가 그 문제로 대가를 치렀거나 반성을 했다면 용납돼야 한다. 젊은 한 시절의 잘못된 판단이 평생의 멍에가 돼서는 안된다. 張총리지명자 역시 만일 잘못이 있었다면 말을 바꾸기보다는 그에 대해 용기있게 사과하는 것이 옳다. 그런 후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떳떳한 자세다.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과거의 흠집만 뒤지려고 하지 말고 그가 어떤 비전을 갖고 그 자리에 임하는가를 보아야 한다. 과거는 미래의 판단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가 쌓은 경력과 지혜가 이 나라를 이끌고 갈 만한가에 검증이 집중돼야 한다.

대중인기 영합주의 식의 검증은 모든 사람에게 상처만 남긴다. 우리 사회를 끌고 갈 지도자들을 놓고 "모두가 도둑놈들이 아닐까"라는 전제로 검증을 한다면 누구에게 유익할 것인가. 이러한 정치적 허무주의가 오히려 민주주의 토대를 허문다. 나는 이번 국회청문회가 그런 자리가 안되기를 바란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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