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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일본의 쟁쟁한 지식인 둘, 독서 내공 겨뤄 남긴 추천도서 400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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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知)의 정원
다치바나 다카시
사토 마사루 공저
박연정 옮김
예문, 302쪽, 1만3500원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다. 물론 의미도 있고. 일본 굴지의 독서가이자 저술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이름. 외교관 출신인 사토 마사루는 한때 정치 사건에 얽혀 감옥 신세를 졌던 논객이다(512일의 수감기간 동안 220권을 읽었다).

두 사람이 자유로운 대화로 ‘독서 내공’을 겨루었다. 이들이 선정한 400권의 추천도서 목록은 책의 또다른 볼거리. 각자 소장한 책에서 100권, 현재 서점에서 팔리는 책 중에서 100권 씩을 골라 독자들에게 권했다. 독서가인 이들은 “차라리 1000권을 고르라면 더 편할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다치바나와 사토는 ‘책’을 매개로 인간과 세상사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쏟아놓는다. 깊이와 넓이에서 1급 지식인의 면모가 엿보인다. 일본의 지적 수준에도 서슴치 않고 칼날을 댄다. 사토가 “반증(反證)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일본은 제대로 된 논쟁과 서평이 없는 나라다. 논쟁에서 논리는 무시되고 쟁점도 없는 채 인격 비방과 중상으로 일관한다”고 비판하자 다치바나는 “최근의 경제적 파탄은 지적 파탄에서 비롯됐다. 그런데도 그런 점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무리가 일본을 장악하고 있다”고 맞장구친다. 한국은 어떨까.

대화는 ‘도대체 교양이란 무엇인가’로 이어진다. 다치바나가 “인간 활동 전반을 포함한 이 세계의 전체상에 대한 폭넓은 지식”, “개인의 정신적 자아 형성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이라고 정의하자 ‘철두철미 반공·반혁명주의자’를 자처하는 사토는 “미지의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읽어내는 힘”이라며 “사상이라는 무서운 ‘독약’에도 버틸 수 있는 힘이 교양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현대 교양교육에는 악·거짓·저속함 등 “인간의 어두운 면에 관한 정보”가 결정적으로 결여돼 있다는 다치바나의 지적도 재미있다.

400권의 추천도서 목록은 철학·과학·경제·역사·문학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마르크스와 공산주의 관련 고전도 여럿이다. 대학에서 불문학·철학을 공부한 다치바나의 과학에 대한 관심이 돋보인다. 신학을 공부한 사토는 경제·문학에 강한 편. 서울대의 ‘권장도서 100권’ 목록과 대조해보니 겹치는 책(또는 저자)도 꽤 됐다. 그러나 서울대 쪽이 정형화된 ‘고전’ 위주라면 두 사람의 목록에는 ‘현대의 고전’이 좀더 많이 포함된 느낌이다. 번역은 대체로 성의있고 깔끔하다. 기시 노부스케(전 일본총리) 같은 유명인을 ‘기시 신노스케’라고 표기한 것은 옥의 티.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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