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에 한국어 가르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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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어·머·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무·엇·을 사·시·겠·습·니·까?"

중국 신장(新疆)성 위구르 자치구의 수도인 우루무치에서 제46중학교 교실을 빌려 운영하고 있는 '우루무치 한얼회 한글학교'에선 주말마다 한글 읽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학교의 교사인 중국동포 송유정(宋惟正·47)씨는 "중국동포 60여명과 중국인 40여명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데 어찌나 열심인지 감탄할 정도"라고 말했다.

김창준(8)군이나 김명활(58·여)씨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흑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교사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평소에는 토·일요일 오후 3시부터 4시간 동안 수업이 진행된다. 하지만 방학 때는 금·토·일요일 오후 1~6시에 수업을 한다.

대우·한화 등의 상사원들로 결성된 '한얼회'가 지난해 7월 7일 이 학교의 문을 열었다. 교장은 김도생(46·무역업)씨이고, 교사는 宋씨와 신장 사범대에 유학 중인 최성실(32·여)씨다.

宋씨는 허베이(河北)성 친황다오(秦皇島)시에서 급수 설비업을 하다 우루무치에 사는 지인의 추천으로 올 3월 이 학교에 왔다. 헤이룽장(黑龍江)사범대에서 조선어를 전공한 宋씨는 5년간 중학교 교사로 일한 적이 있다.

"지난달 보름엔 단오절을 맞아 소풍을 갔지요. 우리 말을 아직 잘 못하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배운 '고향의 봄'을 목청껏 부르면서 눈물을 연신 흘렸답니다."

태진아의 '사모곡'을 구성지게 부르는 宋씨는 "일제시대에 만주로 이주한 할아버지께서 '우리 말에는 얼이 서려 있으니 절대 잊어버리면 안된다'고 하시던 말씀을 항상 새긴다"고 말했다.

이 한글학교의 교사·학생들은 요즘 몹시 들떠 있다. 1년간의 소수민족 언어 교육에 고무된 우루무치 시당국이 별도 건물을 마련해 주고 한글학교 졸업장을 받은 사람이 한·중 투자기업에 우선 취업할 수 있도록 우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宋씨는 "47개 소수민족이 모여 사는 대륙의 서쪽 하늘 아래에 한글이 뿌리내리게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우루무치 인구 약 2백만명 가운데 한민족은 상사원까지 모두 합쳐도 1천명이 채 안된다.

우루무치=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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