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빠진 국회 '약값압력' 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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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다국적 제약사들의 약값 로비와 압력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국회 진상조사위원회가 어제 열렸다. 그러나 증인으로 채택된 여섯명 중 유일하게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출석하지 않았다. 자신의 경질을 약값 로비·압력에 연결시켜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가 진상 규명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면 공인으로서 너무 무책임한 행위다.

李전장관은 경질 발표 직후 "보험 약가 제도 개혁에 대해 국내외 제약산업이 심각하게 저항했고 다양한 통로를 통한 압력을 행사해 왔다"고 폭탄 발언을 해 일파만파의 파장을 몰고 왔다. 이후 다국적 제약사의 로비·압력 의혹에 관한 새로운 정황이 계속 드러나며 국회에서 쟁점으로 부각되기에 이른 것이다. 김홍신 의원은 국회에서 "건보 약가 정책과 관련해 미국과 다국적 제약사들은 지난해 5월 이후 26차례나 압력을 행사했고, 결국 우리 정부가 이에 굴복했다" "미국 고위 관리가 복지부를 방문해 차관을 상대로 폭언을 퍼붓고, 무례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은 물론이고 우리 주권과도 관계되는 심각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로비와 압력의 실체, 정책 결정의 왜곡, 청와대 관련 여부 등이 진상조사의 초점이 돼야 했다. 그러나 핵심 주인공인 李전장관은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증인으로 나온 김원길 전임 장관은 "미국 측의 주장은 당연히 제기될 수 있는 것이고, 압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더 헷갈리게 했다. 하루 일정의 국회 진상조사는 이렇게 끝났다. 이 문제는 청문회나 국정감사를 통해 분명히 규명돼야 한다. 李전장관이 이 문제를 흐지부지 넘기려 한다면 이야말로 공인의 자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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