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과 동원의 음습한 文件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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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의 행태를 해부하는 코드는 '문건정치'인가. DJ정권 들어 가파른 정국 대치와 국민적 의혹을 일으켰던 이슈에는 민주당과 여권 관계자들이 얽혀 있는 '문건'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 가운데 메이저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시나리오가 적힌 여러 문건이 있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문제와 관련한 대선관련 문건도 나왔다. 이들 문건에는 교묘한 공작과 동원의 음습한 냄새가 풍겨 거센 여론 비난을 받았다. 이번에는 민주당 외곽 연구기관 관련자의 작품이라는 '이회창 불가론' 문건으로 거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의 주장대로 그런 문건 작성은 정상적인 정당활동의 하나다.'이회창 후보를 반대하는 정당'인 만큼 '이회창 불가론'의 논리와 근거를 담은 전략문건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불가론 확산을 위해 '우호적인 지식인과 시민단체 동원, 인터넷 매체 활용,TV다큐멘터리 형식보도' 등을 구체적인 전략으로 제시한 점에 있다. 문건정치의 검은 유혹인 여론 왜곡·외곽 지원·배후 조작을 시도했다는 의심을 살 만한 대목이다. 더구나 이 부분은 언론장악 사태 때 실감나게 드러났듯 친(親)정부 쪽의 언론매체·학계인사·일부 시민단체를 외곽 지원대로 동원한 행동 패턴과 빼닮았다.

문건정치의 위험 요소는 반칙과 무리수에 있다. 수세에 몰린 정국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비정상적인 수단을 찾으려는 유혹에 빠진다. 무엇보다 공존과 상생이 아닌 '적과 동지'로 나누는 2분법의 갈등정치·공작정치가 아직도 활개칠 수 있는 토양이 문건정치의 폐해(弊害)다. 한나라당이 2000년 12월 언론인들을 적대적·우호적 성향으로 나눈 문건을 만든 것도 그런 풍토의 산물일 것이다.

민주당은 이번 문제의 문건에 대해 누가 작성했고,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를 소상히 밝혀야 한다. 당 공식문서가 아니라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문건정치에 담긴 공작적 요소의 퇴출은 정상적 민주정치를 위한 전제고 기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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