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이상은 기자
기자 빼고 모두 영어권 … 낯설은 동행의 시작
1 무용수들이 부주키 음악에 맞춰 그리스 전통춤을 추고 있다. 2 관광객에게 인기인 가죽샌들은 고대그리스 때부터 존재했던 것. 3 일행이 들고 건배하는 그리스의 전통술 우조. 작은 잔이라고 얕보다간 큰 코 다친다.
올리브열매와 페타치즈가 특징인 그리스 샐러드.
델피에서 술로 벽 허물어 … 고마운 디오니소스여
이번 여행은 처음 4일은 육지 여행, 나중 4일은 크루즈 여행이었다. 처음 4일 동안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 델피의 아폴론 신전 등을 둘러봤다. 유적들은 대부분 보수 공사 중이긴 했지만 듣던 대로 화려하고 웅장했다. 관광객도 많았다. 하지만 새벽 6시에 일어나 버스로 이동하는 여행일정의 피곤함 때문인지 감탄사는 나오지 않았다.
3일째의 밤, 아테네와 올림피아를 거쳐 델피로 향했다. 그때까지도 일행과는 서먹했다. 일행은 나라별로 자연스레 그룹이 형성돼 있었다. 유일한 한국인으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들만 아는 ‘알아들을 수 없는 농담’이었다. 그러나 어렵게 떠나 온 배낭여행. 달리는 버스 속에서 ‘어떻게 해야 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가이드 애덤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델피로 가는 동안 버스 안에서 간단한 자기 소개를 하겠습니다.” 순간 손에 땀이 찼다. 좋아하는 유명 인사와 그 이유, 현재 데이트 하는 사람이 있는지, 평생을 살아오며 가장 당황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마지막으로 만들어먹은 요리는 무엇인지 등등을 다 이야기해야 했다. 마침내 순서가 왔다. 마이크를 잡고 애써 큰 목소리로 말했다. “영어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닌 사람이 나 외에는 한 명도 없어서 당황했다. 마지막으로 만들어 먹은 음식은 비빔국수다.”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좋아하는 유명 인사는 힙합 가수 플로라이다. 그의 톡 튀어나온 배가 귀엽기 때문”이라는 말에 일행은 박장대소를 했다. 그리고 자꾸만 “정말이냐”고 물어왔다.
우조는 소주처럼 투명하지만 물을 부으면 우유처럼 뿌옇게 변한다.
미코노스의 흰색·파란색 조화, 터줏대감 펠리컨 …
갑자기 나타나 관광객들을 놀랜 펠리컨 ‘페드로’.
우리가 탄 배는 ‘아쿠아마린 호’. 흔히 생각하는 호화 크루즈는 아니다. 방이나 화장실 모두 비좁았다. 하지만 그리스 여행의 하이라이트, 미코노스와 산토리니 섬이 기다리고 있어서 마음은 들떴다. 배에 오르기 전, 남은 4일을 함께 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컨티키를 통해 여행하던 다른 그룹과 합류한 것이다. 20명 정도였으며 역시 모두 영어권에서 온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었다.
‘아쿠아마린’호엔 300여 명이 탑승했다. 미코노스를 향해 가는 배 안에서 그들은 저마다 여유를 즐겼다. 풀장 주변에 누워 햇빛 아래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그리스 춤 강습을 받기도 했다. 그런 광경들을 구경하는 사이, 온통 하얀 섬이 점점 다가왔다. 미코노스였다. ‘어쩜 이렇게 다 흰색일 수 있는지’ 신기했다. 미코노스와 산토리니는 모두 강한 햇빛을 반사하기 위해 집을 흰색으로 칠하기 때문이다. 미코노스의 랜드마크인 다섯 개의 곡물 풍차 앞에서 모두들 ‘인증 샷’ 한 장씩을 찍고, 골목길 구경을 시작했다. 책에서 본 대로 정말 대문은 새파랬고 길바닥은 바둑돌 무늬였다. 빨래조차 색을 맞춰 너는지 파란색이었다. 빨간색, 주황색 등 원색 옷을 파는 가게들이 온통 흰색과 파란색인 풍경에 포인트를 주고 있었다. 배가 고파진 우리는 관광객으로 꽉 찬 좁은 골목을 뚫으며 타베르나로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일행 중 한명인 배스(26)가 괴성을 질렀다. “악, 저 새한테 맞았어!” 펠리컨이 등장한 것이었다. 펠리컨은 미코노스의 터줏대감 새다. 1954년 1대 펠리컨이 미코노스에 자리를 잡았고 지금 있는 펠리컨은 3대째다. 미코노스 사람들은 그 펠리컨을 “페드로”라 불렀다. 갑자기 나타난 페드로는 뒤뚱거리며 온 골목을 뛰어다녔다. 펠리컨에 놀란 배스를 진정시키고 타베르나에 들어갔다. ‘섬에 왔으니 그리스식 해산물 요리를 먹자’는 배스의 의견에 모두들 찬성했다. 그 해산물 요리는 ‘칼라마리’, 다름 아닌 오징어 튀김이었다. ‘한국 길거리에서 먹던 것과는 다를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더 잘게 썰었다는 점만 빼면 똑같았다. 지중해 레스토랑에서 ‘한국의 길거리 맛’을 만났지만, 실망스럽기보단 반가웠다.
비틀비틀 당나귀 타고 산토리니 쪽빛바다 보고
5손에 땀을 쥐게 한, 산토리니에서의 나귀 체험. 6 크루즈 승객들이 춤을 배우고 있다.
첫날의 어색함 어디 가고 헤어진다는 아쉬움만 …
배로 돌아와 마지막 밤을 보냈다. 30여 명의 젊은이들은 새벽까지 잠들지 않았다. 일부는 개별적으로 유럽 여행을 더 하고 갈 계획이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버스로 갈아타고 다 같이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으로 돌아왔다. 어색한 첫 만남이 시작된 곳이었다. 신타그마 광장에서 헤어지며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서로의 페이스북(소셜 네트워크 사이트) 주소를 주고받았다.
미케네에 있는 아가멤논의 묘. 벽에 말을 하면 소리가 되돌아온다고 해, 귀를 대고 확인 중이다. 결국 소리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다국적 배낭여행이란?
말 그대로 전 세계 사람들이 한데 모여 같이 다니는 단체 배낭여행이다. 컨티키·탑텍·트렉 아메리카 등이 대표적인 여행사다. 이번에 체험한 컨티키(www.contiki.co.kr)의 경우, 만 18~35세 사이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혼자선 가기 어려운 곳도 쉽게 갈 수 있고 국적을 초월한 우정도 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영어권에서 온 참가자들이 많으므로, 영어가 불가능하다면 힘들 수 있다. 기본적인 영어회화 공부와, 외국 친구들에게 선물할 한국 기념품을 준비해가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