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에 가벼운 운동하고 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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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지난 20일 서울 뚝섬 근처의 한강시민공원.

밤 10시가 넘었지만 무더위를 피해 가족끼리 공원을 찾은 주민들로 붐볐다. 여기서 만난 하모(27)씨는 "요즘은 입맛이 없고 잠이 잘 안온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올들어 처음으로 동해안 지역에서 확인된 열대야(熱帶夜). 하루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이어서 한밤에도 더위를 느끼게 되는 기상현상이다.

고려대 구로병원 가정의학과 홍명호 교수는 "열대야로 체온이 올라가고 땀을 많이 흘리게 되면 입맛이 떨어지며 소화불량·탈수·수면부족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약 하루를 주기로 반복되는 서케이디언 리듬(circardian rhythm)도 깨진다. 밤엔 잠이 안오고 낮엔 졸리며 무기력해지는 것은 생체리듬이 혼란에 빠진 결과다.

이 때 과음·신체적 무리를 하면 몸의 자율신경계가 고장난다.

◇잠이 달아난다=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강희철 교수는 "졸림은 체온이 활동할 때보다 조금 낮아져 있을 때 느끼게 된다"며 "열대야 시기에는 체온이 올라 있어 졸립다는 느낌이 적어져 잠이 달아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반대로 너무 시원해도 우리 몸은 체온을 올리기 위해 근육운동을 시작하므로 잠자기 어려워진다. 숙면을 취하기 딱 알맞은 실내 온도는 18~20도.

을지대학병원 정신과 유제춘 교수는 "열대야는 중추신경계를 흥분시켜, 불면에 시달리거나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증상이 '수면지연 증후군'.

◇생체리듬 정상화해야=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선우성 교수는 "열대야를 극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뇌 속의 생체리듬을 정상 가동시키는 것"이라며 "늦게 자든 일찍 자든 늘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활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밤에 잠을 설쳤다고 해서 늦잠을 자거나 낮잠을 30분 이상 잤다가는 불면의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는 것.

열대야 시기엔 침실의 온도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에어컨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1시간 이상 켜놓으면 실내가 건조해져(습도가 30~40% 수준으로 떨어짐)여름 감기에 걸리기 쉽다. 선풍기는 수면시작 한두시간만 몸에서 멀리 떼어놓고 가동시키는 것이 좋다. 선풍기를 켠 채 잠을 자면 체온 저하·질식사의 위험이 따른다. 만성 폐질환자나 어린이·노약자는 가급적 선풍기 바람을 직접 쐬지 말아야 한다.

취침 전 샤워·등목을 통해 체열을 식혀주는 것도 방법이다. 샤워 후엔 젖은 수건으로 몸에서 물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만 닦아내는 것이 좋다.

잘 때는 가능한 한 옷을 모두 벗되 소화기가 예민한 사람은 배부위만 타월 등으로 덮어주면 된다.

가벼운 운동도 열대야 극복에 유익하다. 단 가급적 이른 저녁 시간에 하되 잠자기 2시간 전엔 과다한 운동을 삼가야 한다. 잠자기 전 지나치게 집중하는 작업을 피해야 하는 것도 같이 이치다.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이정권 교수는 "배가 고파 잠을 이루기 어려울 때는 따뜻한 우유 한잔 정도를 마시는게 좋다"며 "카페인이 든 음료·술·담배·각성제 등은 피할 것"을 당부했다.

또 수박·찬 음료수를 너무 많이 먹으면 화장실에 다니느라 잠에서 깨기 쉽다. 늦은 밤에 공포 영화를 보면 지나친 자극으로 신경이 예민해져 잠을 설치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자세다. 짜증을 내거나 시원한 것만 찾게 되면 자율신경계가 혼돈상태에 빠져 체온조절 능력을 잃게 된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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