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제2부 薔薇戰爭제5장 終章:그의 목을 가져가야 믿을 것이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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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배훤백.

그는 일찍이 활을 쏘아 김양의 넓적다리를 맞추었던 김명의 심복 부하였다. 김양이 왕성을 수복하였을 때 사기에 나와 있던 대로 '개는 제각기 주인이 아닌 사람에게 짖는 것이다. 네가 주인을 위해 나를 쏘았으니 너는 의사다. 내가 괘념치 아니할 것이니, 너는 안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하고 살려주었던 바로 그 무장이었다. 살려주었을 뿐 아니라 염장의 직속상관으로 시위부의 군장이 되었던 것이다.

"어찌하여 배훤백의 목을 달라는 것이냐. 사사로운 개인의 원한 때문이냐."

김양이 묻자 염장이 대답하였다.

"어찌 사사로운 원한이 있겠습니까, 나으리. 다만 소인이 호랑이굴인 청해진으로 들어간다 하여도 장보고는 소인을 믿지 못할 것이나이다. 장보고는 이미 소인의 정체를 알고 있어 의심하여 믿지 아니할 것이나이다. 따라서 배훤백의 목을 베어 거짓으로 투항한다면 그땐 장보고가 소인을 믿어줄 것이나이다."

이 때의 기록이 사기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조정에서는 장보고를 치자니 혹 불측의 환란이 있을지도 모르고, 또 그대로 내버려두자니 그 죄는 용서받을 수 없으니, 우려에 싸여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중 그때 용감한 장사라고 세상에 널리 알려진 무주인 염장이란 자가 와서 말하기를 조정에서 만일 자신의 말을 들어준다면 자기는 일개 병졸로서 수고롭게 하지 않고 맨주먹으로 가서 궁복의 목을 베어 바치겠다 하였다."

기록에 나와 있는 대로 '자기의 말을 들어준다면'의 첫번째 조건은 이처럼 배훤백의 목이었던 것이었다. 두번째의 조건은 '장보고를 역적으로 선포하는 대왕마마의 교서'였다. 이에 대해 염장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장보고를 대역죄인이라고 선포하는 대왕마마의 교서가 없다면 아무리 소인이 장보고의 목을 베어 죽인다고 하더라도 그의 부하들이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장보고가 죽었다고 할지라도 주인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를 것이나이다."

자객 염장이 내건 두가지의 조건은 합당한 것이었다.

그 다음 날 즉시 김양은 은밀히 배훤백을 불러 말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척구패요'라 하였다. 이는 '도척이 기르는 개는 요임금 같은 성인을 보고도 짖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개는 주인을 위해서 짖는 것이다. 네가 한 때 활을 쏘아 내 다리를 맞춰 쓰러뜨린 것도 너의 주인을 위해서 짖은 것이므로 너는 의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너의 옛 주인은 이미 죽었으니, 이제 너의 주인은 누구일 것이냐."

"신의 주인은 오직 나으리뿐이나이다."

"그러하면 그대가 이제 나를 위해 짖어줄 것인가."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대의 목숨일지라도."

김양의 말에 배훤백이 단숨에 대답하였다.

"이 몸은 이미 주인의 것이나이다. 이미 한번 죽었던 몸인데 두번 죽는 것이 무슨 두려움이 있겠나이까."

"그럼 그대의 목숨을 다오."

김양이 말을 하자 배훤백은 스스로 칼을 빼어 자신의 목을 찔러 자결하였다.

배훤백의 목을 벤 후 그 목 없는 몸만을 따로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주면서 김양은 울며 다음과 같이 한탄하였다.

"일찍이 노자가 이르기를 평소에는 충불충(忠不忠)의 구별이 판연치 않으나 일단 국가의 변란이 일어났을 때 충신의 진가를 알 수 있다 하였는데, 그대야말로 경경단충(耿耿丹衷)의 충신이로구나."

한편 염장은 소금에 절인 배훤백의 수급과 대왕마마의 교서를 들고 단걸음에 청해진으로 출발하였다.

이때의 기록이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나오고 있다.

"…염장이 거짓으로 나라를 배반한 양으로 청해진에 투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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