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생활속으로 파고드는 유혹>유사 마약 노점상 통해 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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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서울 중구 남창동의 수입상가에서 20여년 동안 수입화장품 등을 팔아온 朴모(50·여)씨. 그는 얼마 전부터 자주 물건을 사러온 50대 여자에게서 "살 빼는 약을 팔아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약효가 뛰어난 데다 세배 이상의 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유혹에 귀가 솔깃해 판매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 약은 마약 성분이 들어있는 중국산 약품이었다. 결국 朴씨는 경찰에 단속돼 구속되고 말았다.

서울경찰청 마약계 고석종(高碩鍾)경사는 "중국산 유사 마약이 수입상가뿐 아니라 미용실·건강원 등을 통해 일반인에게 폭넓게 확산 중"이라며 "소비자 대부분이 마약성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복용한다"고 우려했다.

이달 초 서울경찰청 마약계 소속 수사요원들은 중국산 마약류 판매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시민으로 위장해 구매에 나섰다. 수사관이 남대문 수입상가의 한 가게에서 "살 빼는 특효약이 있다는데, 구할 수 있느냐"고 묻자 가게 주인은 주저없이 중국산 다이어트약 60알을 가져다줬다고 한다.

이달 초 경찰청 외사분실은 보따리상으로부터 사들인 가짜 비아그라 등 중국산 알약 수만정을 전국에 팔아온 11명을 붙잡았다. 경찰이 성분을 분석한 결과 일부 알약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됐다.

경찰청 박성남(朴成男)경감은 "살 빼는 약뿐 아니라 성기능 촉진제·수면제·발기부전 치료제 등 정체 불명의 중국산 알약에서 마약 성분이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약들은 서울·부산의 길거리 노점상 등을 통해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 서울경찰청 간부는 "고속버스·오토바이를 이용한 택배를 통해 히로뽕을 파는 사례가 계속 적발된다"며 "원가가 싼 중국산 히로뽕이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소매치기 같은 잡범들도 마약 판매에 나서는 실정"이라고 걱정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에서 몰래 들여오는 알약들은 일단 마약 성분 포함 여부를 의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관세청 관계자는 "최근 시민들 사이에 살빼는 약으로 잘못 알려져 유통되는 중국산 향정신성 의약품이 디아제팜·펜터민 등 10여종에 이른다"고 밝혔다.

경찰청 최해영(崔海永)외사분실장은 "중국에서 밀반입되는 약품들은 민간요법에 따라 각종 성분들을 무분별하게 섞어 만든 것이 대부분"이라며 "약효를 즉각적으로 나타내게 하기 위해 마약성분을 넣는 것 같다"고 했다.

<특별취재팀>

이규연·김기찬·김창우·강주안·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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