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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CEO’ 아이돌 <중> 한국형 아이돌의 성장 시스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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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우리 대중문화계에서 아이돌은 ‘대박 상품’으로 통한다. 만성 불황에 시달리는 음반 시장에서도 슈퍼주니어·소녀시대 등은 20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디지털 음원 시장도 마찬가지다. 올 2월부터 5월까지 엠넷닷컴의 매출액(다운로드·스트리밍) 순위를 조사한 결과 20위권에 오른 가수 가운데 모두 8팀이 아이돌 그룹이었다.

원더걸스가 지난해 6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조나스 브라더스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해 ‘노바디’를 부르고 있다. 지난해 미국 진출에 성공한 원더걸스는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빌보드 차트 100위권에 진입했다.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이돌의 이 같은 대박 행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해답은 기획사들의 치밀한 전략에 있었다. 아이돌이 흥행의 주역으로 떠오르면서 연습생 시절부터 해외 진출까지 철저히 관리하는 ‘한국형 아이돌 성장 시스템’이 정착됐다. 상품으로 치자면, 기획(연습생)→제품 출시(데뷔)→홍보(방송 출연)→수출(해외 진출)에 이르는 모든 단계가 전문 경영인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셈이다.

① 연습생 시스템=가요 기획사들은 재능 있는 신인을 발굴하는 데 역량을 집중한다. 직접 길거리 캐스팅에 나서는 건 물론이다. 과거 H.O.T 멤버들이 대부분 이 같은 길거리 캐스팅으로 발굴됐다. 한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전국을 돌면서 많게는 1000명 이상 면접을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오디션을 통해 데뷔한 사례가 늘고 있다. 대부분의 기획사가 비정기적으로 공개 오디션을 벌인다. 2006년 SBS를 통해 방영된 JYP엔터테인먼트의 ‘슈퍼스타 서바이벌’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오디션을 벌여 선발한 12명이 경쟁을 펼쳤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준호·찬성·택연은 훗날 연습생을 거쳐 2PM 멤버로 데뷔했다.

아이돌은 데뷔에 앞서 평균 2~3년씩 연습생 생활을 한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기획사에 나와 춤·노래 연습을 하는 게 일상이다. 평균적으로 연습생 가운데 절반 가량만 최종 데뷔에 성공한다고 한다. 데뷔 이후엔 합숙 생활이 원칙이다. 사적인 외출도 매니저에 의해 철저히 관리된다. 한 아이돌 그룹의 매니저는 “밤늦게까지 일정이 이어지기 때문에 함께 생활하는 게 효율적인 면이 있다”면서도 “멤버들의 사적인 부분까지 일일이 통제해야 할 때는 마음이 좀 아프다”고 말했다.

② 에이스 전략=아이돌 그룹에도 멤버간 실력차가 존재한다. 그래서 데뷔 초기엔 멤버들 가운데 통통 튀는 에이스들이 전면에 나서 그룹 전체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경우가 많다. 씨엔블루의 정용화가 그랬다. 정용화는 데뷔 직전 SBS 드라마 ‘미남이시네요’에 출연해 인지도를 끌어 올렸다. 정용화의 인기 덕분에 주목을 끈 씨엔블루는 올 1월 데뷔 2주 만에 가요 순위 프로그램 1위에 오르기도 했다. 2AM의 조권과 애프터스쿨의 유이 역시 각 팀의 대표선수라 할 만하다. 조권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유이는 드라마·CF 등에서 활약하면서 팀 전체의 인기를 주도했다.


③ 세대 초월한 인기=과거 아이돌은 10대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최근 데뷔한 아이돌들은 세대를 초월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팬층이 10대에서 30~40대로 점차 넓어지는 추세다. 소녀시대의 ‘지(Gee)’ 신드롬에 이어 걸그룹 열풍이 불면서 생겨난 ‘삼촌팬’이란 신조어는 이 같은 현상을 상징한다. 최근엔 근육질 몸매의 남성 아이돌인 ‘짐승돌’을 따르는 ‘이모팬’이란 말도 생겨났다. 5월 발매된 슈퍼주니어 4집 앨범이 2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것도 “구매력이 있는 30대 이상의 팬들이 앨범을 많이 샀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④ 한류의 중심=2000년대 초반 보아를 시작으로 아이돌 가수의 해외 진출은 일종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았다. 일본 활동을 병행했던 동방신기와 중국·동남아에서 활동을 이어갔던 슈퍼주니어도 한류 열풍의 중심이었다. 특히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는 대만에서 33주 연속 차트 1위에 오를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최근엔 걸그룹의 일본 진출이 활발하다. 카라·포미닛이 이미 일본에서 데뷔 무대를 치렀고, 다음달엔 소녀시대가 일본에 진출한다.

일본의 유력 시사주간지 ‘아에라’는 12일자로 발간된 최신호에서 아이돌들이 주도하는 한국 팝음악(K-POP)이 일본 시장을 석권하는 ‘코리안 인베이젼(Korean Invasion·한국의 습격)’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특집을 싣기도 했다. 아이돌 성격이 짙은 영국 그룹 듀란듀란·컬처클럽 등이 1980년대 미국시장에서 성공했던 것처럼 한국 대중음악이 일본 내에서 상승단계를 넘어 정착단계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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