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기간 2~3년 단축 … 조합원 분담금 20% 정도 절감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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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16일부터 공공관리제가 시행되면 재개발·재건축 사업 속도가 빨라지고 사업비용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시범지구로 지정돼 공공관리제가 시행 중인 성수동 일대 재개발 예정 구역. [중앙포토]

16일부터 서울의 모든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환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서울시와 구청이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공공관리제’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관련법이 마련돼 전국적으로 도입이 가능해진 이후 서울시가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도입을 결정했다.

공공관리제는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할 때 구청 등 공공기관이 정비업체를 직접 선정하고 조합 설립과 시공사 선정 과정을 관리해주는 제도다. 정비업체를 선정하고 사업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데까지 비용은 전액 서울시 및 구청이 대주고, 그 이후 사업비용도 관이 저리 대출을 주선해 주는 식으로 진행한다.

◆서울시내 457개 단지, 14만 가구에 적용=적용 대상은 일단 시내 전체 도시 정비사업의 63%에 해당하는 457개 단지다. 사업 추진이 빨라 시공사를 선정한 곳은 제외된다. 적용범위가 최소 300가구 이상 재개발·재건축 단지이므로 당장 최소 14만 가구 이상이 공공관리제에 따라 정비사업을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서울에선 향후 도심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적용 대상이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아울러 경기도·인천시 등 수도권과 부산시 등 다른 지자체에서도 공공관리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적용 대상이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계속 늘어나는 것이다.

◆“혼탁한 시장 투명해진다”=정부는 공공관리제가 도입되면 혼탁한 재건축·재개발 시장이 깨끗하게 바뀔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비업체·설계자·시공사 등 협력업체 선정이 투명해지고 공정해져 주민 갈등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구청이 정비업체를 선정하고 단일한 추진위원회와 조합이 결성되도록 감독하고 지원한다. 지금까지는 주민들이 자금이나 정보 면에서 스스로 추진위를 만들 역량이 부족했다. 다수의 추진위가 업체로부터 불법자금을 조달해 조합을 만들기 위해 서로 경쟁적으로 조합원 동의서를 받았다. 조합원 동의서를 받기 위해 수많은 영업사원이 고용됐고 주민 간 갈등도 컸다. 이 과정에서 사업비용은 늘어나고 추진 과정이 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기존 정비사업과 비교해 사업 추진 단계가 달라지는 게 특히 중요하다. 과거엔 정비사업이 ‘정비구역 지정-추진위 구성-조합 설립-시공사 선정-사업시행 인가-관리처분 인가-철거 및 착공-준공’으로 사업이 진행됐다. 하지만 앞으론 ‘정비구역 지정-추진위 구성-조합 설립-사업시행 인가-시공사 선정-관리처분 인가-철거 및 착공-준공’으로 바뀐다. 시공사 선정이 사업시행 인가 이후로 바뀐 것이다. 공공관리의 범위는 추진위원회 구성부터 시공사 선정까지다. 시공사를 사업시행 인가 이후에 뽑으면 많은 게 달라진다. 사업시행 인가는 아파트 설계도면 등 구체적인 계획이 확정돼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업시행 인가를 받고 시공사를 선정하면 업체는 확정된 사업계획을 기초로 정확한 공사비를 책정할 수 있다.

◆조합은 결정, 공공은 감독=서울시는 공공관리제에서 공공은 그저 관리하고 감독하는 것일 뿐 결정은 조합원이 내리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공공은 절차가 투명하고 규정에 맞는 것인지만 관리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공공관리제로 인해 아파트 품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시는 조합이 고급아파트 컨셉트를 가지고 설계자와 시공사를 선정하면 그만이라고 강조한다. 서울시 최성태 공공관리과장은 “공공관리제 기준으로 시공사를 선정하는 것은 결코 ‘최저가낙찰제’를 의미하지 않는다”면서 “조합이 설계자와 시공사 선정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고 시는 그 절차가 공공관리제 시공사 선정 기준에 부합하는지만 확인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조합원 분담금 감소 효과=공공관리제로 조합원 분담금은 줄어들 전망이다. 사업비가 줄어드는 것은 사업기간이 줄어들고 공사비가 줄어드는 효과에 따른 것이다. 정비사업은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돈을 금융권에서건 정부자금에서건 대출해서 쓴다. 지금까지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평균 기간은 7.7년이었다. 서울시는 공공관리제 도입으로 사업기간 단축만 평균 2~3년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자부담이 3분의 1 이상 줄어드는 셈이다.

공사비도 줄어들 전망이다. 정비사업은 전체 사업비의 70~80%를 공사비로 쓴다. 서울시는 이 공사비가 20% 정도 절감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공공 발주사업의 아파트 평균 낙찰률이 72%인 점을 감안한 것이다. 아울러 도시주거환경정비기금을 활용한 낮은 금리(4.3%)도 사업비 부담을 크게 줄여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성태 과장은 “사업지마다 조합원수, 건립가구수, 구역 특성 등 여건이 다르겠지만 초기단계부터 공공관리제로 사업을 하는 곳은 총사업비의 20% 정도가 줄어드는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 초기단계 효과 더 봐=전문가들은 공공관리제는 한강 전략정비구역인 성수구역 등 아직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사업 초기 지역일수록 유리하다고 말한다. 한강르네상스 사업지역 등 서울시가 역점을 두면서 새로 지정한 사업지역일수록 공공관리제 효과를 많이 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반면, 사업을 추진한 지 오래된 뉴타운지역 등의 사업지역은 오히려 사업에 제공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 이들 지역에선 추진위나 조합이 가계약을 맺은 시공사로부터 조합 운영비 등의 명목으로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까지 대여금을 미리 받았다. 만약 공공관리제 매뉴얼에 따른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이들이 탈락할 경우 대여금 반환 문제가 사업 추진에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J&K 부동산투자연구소 권순형 대표는 “추진위가 건설사에 빌린 대여금으로 인해 건설사와 조합 간 소송 등이 일어나 사업 추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박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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