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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아차하면 관중은 떠난다 : "공짜표를 없애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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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 끝나고 시작한 K-리그에 관중이 밀어닥쳤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조별리그에서 1무2패로 탈락한 뒤라 예상을 뒤엎는 열기에 축구계는 깜짝 놀랐다.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보여준 이임생의 '붕대 투혼' 등 선수들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본 국민이 감격해 처절하게 무너진 한국 축구를 되살려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이다.

이동국·고종수·안정환을 보러 온 '오빠 부대'의 출현도 그라운드를 달궜다.

그러나 이 열기는 불과 2년 만에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98년 1만5천명선, 99년 1만3천명선에 달했던 평균 관중은 2000년에는 9천8백여명으로 줄어들었다. 극성스럽던 오빠 부대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프로축구연맹과 각 구단이 자초한 결과였다. 제발로 찾아온 '잠재적 축구팬'을 '진정한 축구팬'으로 엮어내는 데 실패한 것이다. 연맹은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프로축구를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각 구단은 눈앞의 승리에 급급해 축구의 참맛을 보여주는 경기를 하지 못했다.

지금의 상황은 98년과 흡사하다. 당장의 인기에 도취해 있다가는 또 다시 거품이 꺼지는 날을 맞게 될 수 있다. 축구장을 찾은 사람을 '최고의 손님'으로 모시는 인식과 준비가 시급하다.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게 '관중수 뻥튀기기'와 '공짜표'다. 현재 홈 구단의 집계를 토대로 연맹이 취합해 발표하는 관중수는 어처구니없을 만큼 부실하다.

문서로 된 근거 자료조차 없다. 경기장 관리·경비를 맡은 용역업체 직원이 출입구에서 계수기로 입장객 숫자를 세어 구두로 보고하면 구단 직원이 이를 합산해 발표한다. 이 과정에서 얼마든지 입장객 수를 부풀릴 수 있다.

예컨대 지난 14일 부천 경기의 입장객 수는 3만1천1백27명(3만5천명 수용)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이날 양 골대 쪽 드넓은 스탠드는 양팀 서포터스 1천5백여명을 빼고는 텅 비어 있었다.

'고무줄 관중수'의 원인은 '공짜표'다. 구단들은 그동안 팬 서비스란 명목으로 초대권을 남발해 무료 입장을 시켜줬다. 부천 SK의 내부 자료에 따르면 14일 무료 입장 예상 관중은 1만2백명이었다.

부부 동반 시 부인은 무료, 초등학생도 무료였다. 남편도 붉은 옷을 입고 올 경우 50% 할인혜택을 받았다. 이러다 보니 정확한 관중수를 집계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주먹구구식 관중 집계와 공짜표 남발은 필연적으로 초과 입장을 부른다. 포항과 광양에서는 정원을 수천명이나 초과한 관중이 통로까지 빽빽하게 들어차 제돈 내고 온 사람들이 불편을 겪은 것은 물론 안전사고의 위험까지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입장객 관리를 철저히 해 축구장을 찾은 손님들이 편안하고 즐겁게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초대권 남발과 무료 입장의 관행을 없애야 한다. 이런 관행은 프로축구의 가치를 스스로 낮추는 처사다. 출범 때부터 공짜표를 철저히 배제한 프로야구에서 배워야 한다.

대신 제 값을 내고 제대로 찾아온 축구팬에게 최대한의 서비스와 경기 관련 정보를 제공해줘야 한다.

전광판과 인쇄물, 플래카드 등을 통해 선수의 신상과 각종 기록, 주요 장면 등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경기 당일 홈 구장을 경기 관전을 핵심으로 한 종합 위락시설로 꾸미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예컨대 구장 안팎에 스포츠용품 등의 할인매대도 꾸미고 먹을거리 장터도 개설하며, 길거리 공연을 마련하는 등의 방안이다.

경기장이 축구경기 하나만 달랑 보고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 그곳에 가면 관전 외에도 뭔가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 꾸준히 관중이 들기를 기대할 수 있다.

관중은 결국 고객이다. 고객은 기대와는 달리 별로 신통한 게 없거나, 조금이라도 불편하다 싶으면 미련없이 떠나는 속성을 지녔다. 프로축구의 발전은 결국 고객만족과 통한다.

정영재·최민우 기자

<시리즈순서>

(上) 지켜진 약속,'CU@K-리그'

(中) 아차하면 관중은 떠난다

(下) 프로다운 프로축구를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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