홧김에 떠났던 인도여행 화 잘내는 성격 재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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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나는 화를 잘 낸다. 몇 년 전에도 홧김에 여행을 갔다. 인도행 이었다. 내 딴에는 '이 놈의 나라'에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일단 떠난 것이다. 그러나 그런 비꼬인 심사로 타국에서도 좋은 게 보일 리가 없다. 곧 나는 '이 놈의 세상'에서는 못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되는 게 없는 여행이었다. 이틀 간 타고 가야 할 버스에 오르자마자, 나는 내가 속아서 특급의 몇 배나 되는 가격을 치르고도 일반 버스에 태워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내 자리 앞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쇠파이프가 가로질려 있어,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무릎이 쇠파이프에 부딪쳤다. 히말라야산맥으로 향하는 버스는 줄곧 야생마처럼 날뛰고, 승객들은 머리가 천장에 닿도록 튀어 올랐다가 좌석에 처박혔다. 그때마다 내 무릎의 물렁뼈는 쇠파이프와 충돌했다.

무성의한 운전사는 나를 산중에 떨궈놓고 가버릴 뻔했다. 휴식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오니 버스는 이미 저만치 산모퉁이를 돌아가고 있었고, 나는 죽기살기로 달렸다. 그 순간 눈앞의 장면이 하얗게 바래면서 두 발로 땅을 짚으며 두 팔을 내젓는 내 동작이 물 속에서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삐그덕, 삐그덕, 무릎이 규칙적인 간격으로 이상한 소리를 냈다. 그 고문기구 같은 버스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배낭을 지고 일어설 수가 없었다. 지금도 나는 무릎이 좋지 않은데 그때의 영향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다음 여행지로 가면서는 버스 안에서 짐을 도둑맞았다.

몇 개월 여행하면서 나는 억울하고 기분 나쁜 일들만 머리 속에 죄다 끌어 모아 그야말로 '뚜껑이 열릴' 지경이 되었다. 경치 좋고 기후 좋은 도시에 가도 비참한 거지들만 쳐다보며 망할 놈의 나라, 멍청한 인간들이라고 이를 갈았다. 모처럼 반가운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나, 나는 그동안 쌓인 울분을 토해냈다. 국민의 대다수를 극심한 빈곤과 무지 상태에 묶어두고 자기들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를 누리는 그 나라의 지배층과, 후진국이 있음으로써 선진국인 잘 사는 나라들을 비난했다. 그런데 듣는 사람들이 별로 흥분해주지를 않았다. 여행 전문가인 그들은 내가 후진국에서 겪는 불편함 탓에 짜증을 낸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이 나라 사람들이 못사는 것 때문에, 여행자인 당신이 정말 그렇게 화가 나나요?"

화를 전염시키는 데 실패해서 나는 더욱 화가 났지만, 타인을 설득할 수 없는 내 분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무지 화가 났다. 그런데 남들은 내가 왜 화났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 또한, 자신이 왜 화를 내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창가에 서있는 사람처럼, 내 외부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화를 냈다. 물론 세상에는 화를 낼 만한 사유들이 많다. 그러나 뒤돌아 서서 화를 내고 있는 나 스스로를 쳐다본 적은 없다. 화가 난 진정한 이유는 무엇인지, 내 안도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이 여행 이후 요즘 나는 글을 쓰기 전에 왜 이런 글을 쓰려고 하는지 자신에게 묻는다. 그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면, 나는 신경질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건 남을 매우 화나게 하는 짓이므로 그만두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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