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기업 이미지 중시한 진취적 경영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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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 13일 오전 65세를 일기로 별세한 박정구(朴定求) 금호그룹 회장은 선이 굵고 의리를 중시한 경영자였다. 빈소가 차려진 서울아산병원에는 구본무 LG회장·조성래 효성회장 등 재계 인사들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손병두(61)부회장은 "고인은 불합리한 금융·조세 제도가 기업의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면서 재계 차원의 공동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며 애도했다. 또 "1998년 전경련 경제사회위원회가 학계·문화계 인사 50여명을 초청해 열었던 한 세미나에서 그는 새벽녘까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역설했다"고 회고했다.

아시아나항공 박찬법(57)사장 등 임직원들은 "그분은 '정직하고 깨끗하게 얻는 이익만이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고, 소탈하고 인정이 많았다"며 애도했다.

고인은 금호그룹을 창업한 박인천(84년 작고)씨의 5남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광주고와 연세대 법학과를 나왔다. 이후 그룹에 입사해 광주고속·금호타이어·금호건설의 대표이사와 금호그룹 부회장을 지냈고, 96년 4월 형인 성용(현 명예회장)씨의 뒤를 이어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그의 경영능력 등에 힙임어 ㈜금호는 세계 10대 타이어 메이커로 성장했고, 금호석유화학은 세계 7위의 합성고무업체가 됐다.

그는 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정보통신·바이오 등 유망 사업에 새로 진출했고 금호생명과 동아생명, 금호종금과 금호캐피탈, 금호타이어와 금호건설을 합병했다. 또 '중국 열풍'이 불기 전인 96년 중국 난징(南京)에 타이어공장을 준공했으며, 우한(武漢)·항저우(杭州) 등 6개 지역에서 고속버스 운송업을 시작했다.

금호그룹이 지난해 유동성 위기를 맞자 고인은 금호타이어와 아시아나항공의 일부 사업부를 파는 등 구조조정에 앞장섰다. 朴명예회장은 고인에 대해 "너무 정이 많아 함께 일한 직원들을 내보내지 못하는 스타일"이라고 회고.

고인은 전경련 등 재계총수 모임때도 화합을 주도하고 사이가 좋지 않은 회장끼리는 화해시켜주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했다. 고인은 광주상공회의소 회장과 전남발전연구원 이사장 등으로 호남지역의 발전에도 힘썼다.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국민·기업·정부·학계·언론계가 협력해야 한다는 '5위1체론'과 품질을 높이더라도 이미지를 개선하지 못하면 제값에 물건을 팔 수 없다는 '이미지 가치창조론'을 주장했다. 지난해 말 3녀(은혜)를 출가시킬 때는 가족들끼리 조촐하게 결혼식을 치렀다.

김동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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