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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쓰나미(津波)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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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집채만 한 파도의 압권은 19세기 초 일본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齊)의 '파도'일 것이다. 호쿠사이는 서구 인상파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에도(江戶) 시대 대표 화가. 유럽 화단에 충격을 주었던 그의 대표작에서 그야말로 집채만 한 파도가 벌떡 일어서 하얀 포말을 말아올리며 작은 나룻배를 집어삼킬 듯 달려든다. 화려한 구도와 강렬한 색상, 세밀한 묘사가 '대자연의 장엄'으로 묵직하게 다가온다.

쓰나미(津波)의 권위자인 조지 P C 박사(하와이대 지구물리학연구소)가 운영하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면 바로 호쿠사이의 '파도'를 볼 수 있다. 집채만 한 파도, 곧 호쿠사이가 대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한 파도가 쓰나미의 이미지다.

쓰나미는 '포구로 밀려드는 파도'란 일본말이다. 일본이 지진으로 인한 해일의 피해를 많이 겪어와 일본말이 국제어가 됐다. 특별히 쓰나미로 불린 것은 파도가 포구에 도착했을 때 갑작스럽게 커지기 때문이다. 마치 마지막 순간 먹잇감을 덮치기 위해 벌떡 일어서는 맹수처럼.

바다가 깊을수록 해일의 파고는 높지 않다. 대신 빠르다. 해안으로 다가와 바다가 얕아지면 파고가 높아지고 속도는 느려진다. 인도양 주변국을 휩쓴 이번 쓰나미의 경우 해저 9km 아래쪽에서 지진으로 지각이 약 11m 솟으면서 일어났다. 길이 1000km의 파도가 심해에서 시속 700km로 달렸다. 하지만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배에서는 크게 느끼지 못할 정도의 파고다. 그 파도가 해변에 도착하는 순간 높이 10m로 돌변했다. 조용한 바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는 듯해 더 놀랍고 두려운 쓰나미다.

인도네시아는 지각의 여러 판이 마주치는 지점으로 화산과 지진 등 자연재해가 잦다. 1883년 자바섬 인근 크라카토아(Krakatoa) 화산 폭발은 세계 최다 인명피해를 기록했다. 30m 높이의 쓰나미를 동반해 3만6000여명이 숨졌다. 최근 100년 내 최강 지진은 1960년 칠레에서 일어났으며, 5000여명이 숨졌다. 이번 쓰나미 희생자가 이미 10만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유례가 없는 최악이다. 전염병과 후속 쓰나미까지 예고돼 있다. 우리에겐 태평양의 쓰나미를 막아주는 일본 열도가 고맙다.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자연에 대한 경외감에 고개가 숙여지는 세밑이다.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