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임신부 당당하게 배 내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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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씩씩하게 수영장 들어선 비키니 임신부

운전·출장도 거리낌없이… 붉은 악마 거리 응원도

헐렁한 촌티 임부복 대신 패션의류 선호

"엄마가 자신감 가지는 게 태교"… 일부선 아직 거부감

다 음달 출산 예정인 이선주(32·회사원)씨는 지난주 프랑스 파리에 출장을 갔다왔다. 가족·직장 동료의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씨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의사도 건강하다고 했고 남편도 승낙했기 때문에 임신했다는 이유만으로 출장을 남에게 미루고 싶지 않았다"는 게 이씨의 설명.

이씨는 최근 남편과 함께 수영장도 찾았다. 봉긋이 솟은 배를 내밀고 수영장을 헤집고 다녔다.

이씨는 요즘도 5㎝ 높이의 구두를 신고 다닌다. 꼼꼼하게 얼굴 화장을 하고 머리도 단정하게 유지한다. 부시시한 얼굴은 천만의 말씀이다. 몸에 붙는 패셔너블한 옷이나 민소매 옷도 거리낌 없이 입는다. 자동차 운전도 필요하면 한다.

나이 지긋한 세대들은 이씨를 '아이 생각 안하는 여자'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신세대 여성들은 오히려 임신했다고 모든 걸 포기하는 여자를 이해하기 어렵다.

임신부들을 향한 각종 금기(禁忌)와 편견에 고개를 저으며 임신 중에도 행복을 추구하는 신세대 임신부가 늘고 있다. 여성의 경제 활동 인구가 늘면서 임신해도 회사 동료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자기 일을 처리하고, 멋에도 여전히 신경쓰는 당당한 임신부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임 신하면 헐렁한 옷에 단화만 신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혔던 구세대들과 달리 이들은 몸에 착 달라붙는 쫄티를 입고 튀어나온 배를 그대로 드러내기도 한다. 수영장에서 비키니를 입기도 한다.

누가 봐도 '임부복'임을 알 수 있는 펑퍼짐하고 촌스러운 꽃무늬 옷도 차츰 자취를 감추고 있다.

임신 7개월에 접어든 이동현(30)씨는 "임신부도 여자예요. 배 나온 모습도 예뻐 보이고 싶어요. 엄마가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야 아이도 편안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임부복 같지 않은 임부복을 선보이는 패션 임부복 전문 브랜드들이 10년 전에 비해 크게 늘었다.

임부복 전문인 쁘래나탈 관계자는 "점점 임신부들의 감각이 높아지고 기호도 까다로워진다"며 "최근에는 색상이나 디자인이 다양한 남방·셔츠를 베이직한 바지에 받쳐 입어 변화를 주는 스타일이 인기"라고 말했다.

임부복 같지 않은 임부복의 인기는 직장 내에서 남자들과의 치열한 경쟁도 한 이유다.

임신해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멋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업무능력 면에서도 예전처럼 인정받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셈이다.

임신 4개월인 이송미(31)씨는 술·약만 빼고 먹고 싶은 건 다 먹는다. 태교에 좋다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평소에 좋아하던 윤도현의 노래를 듣는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라는 게 그녀의 설명.

최 영진(30·임신 5개월)씨도 월드컵 기간 중 큰 아들(3)과 거리 응원전에 다녀 왔다. 위험하다며 말리는 사람이 많았지만 최씨는 "뱃속의 아기에게도 월드컵 열기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임신 중에 공부를 하는 엄마들도 많다. 김윤정(33·임신 7개월)씨는 몇달 전 휴직계를 낸 뒤 컴퓨터·재봉 등을 배우고 있다.

김씨는 "엄마에게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면서 태교도 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라며 "주변에도 자격증 공부를 하거나 동네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는 임신부들이 많다"고 전했다.

임신부 교육기관인 '토끼와 여우'이태연 실장은 "임신과 출산으로 여성만 손해를 본다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며 "임신부들은 여자로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면서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엄마의 자질을 갖추기위해 열심히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신부들이 당당하게 배를 내밀고 다니기에는 아직 사회적인 분위기가 썰렁한 편이다.

김수연(30·임신 8개월)씨는 길을 다니다 종종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사람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배 앞을 스쳐 지나가요. 지하철에서 노약자 보호석에 앉았다가 할아버지·할머니에게 혼난 적도 많고요. 아직은 임신부가 마음 편히 다니기 힘든 것 같아요."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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