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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소통의 세 가지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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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집권 후반기를 맞은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가 소통과 화합에 두어졌다 한다. 그동안 정부의 소통 능력에 대해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기에 그 방향에 대해 이론이 있기는 어렵다. 그러나 소통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처럼 이념적 갈등, 학연·지연의 연고이익적 갈등 등 갈등의 골이 깊은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소통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정부로서는 소통을 방기(放棄)할 수 없다. 소통이 바로 정부의 성공비결이기 때문이다. 소통이 정부의 성공에 기여하려면 세 가지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국민과의 소통이다. 기업이 명품을 만들려면 고객과 소통해야 하듯이 정부가 명품의 정책을 만들려 해도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선제적으로 정보도 제공하고 국민의 비판과 질책도 들어야 한다. 그래야 정부에 신뢰가 생기고 정책도 명품에 가까워질 수 있다. 정책에 ‘대중의 지혜’를 투영시키는 ‘테스트 베드(test bed)’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4대 강 사업 논란이 확산된 것도, 천안함 사건의 전말(顚末)에 의심이 증폭된 것도 이러한 소통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통이 중요하다 해서 각계각층의 이기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소통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또 하나의 ‘공유지 비극’을 초래하는 포퓰리즘일 뿐이다. 정부가 그런 비극을 막으려면 정부 자신의 가치관이 확고해야 한다, 중도란 자의적인 중간이 아니라 일관된 가치관을 가진 ‘제3의 길’이다. 그런 가치관이 있어야 들어주지 말아야 할 요구를 거절할 수 있고 뽑아야 할 ‘대못’도 찾아낼 수 있다. 특히 지금 우리 국민은 자신의 중심을 잡아줄 가치관에 목말라 있다. 근래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그렇게 잘 팔릴 만큼 우리에게는 가치관의 결핍감이 있다.

둘째, 정부 내 소통이다. 정부 시스템의 역량이란 한마디로 조정 역량이고, 그 조정 역량은 소통에서 나온다. 정부 내에서도 제대로 된 소통이 있기는 어렵다. 부처는 이기주의의 포로이기 쉽고, 조직문화는 위계에 짓눌리기 쉽다. 더구나 어느 정부에나 주인의식을 가진 실세들이 있기 마련이다. 정부 내 소통이 되려면 이런 윗사람과 실세들이 섬김의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그들이 독주하면 아랫사람과 비(非)실세들은 입을 닫게 되고, 그러면 조정은 사라지고 지시와 명령만 남아 제기돼야 할 문제는 잠복하기 마련이다. 정치적 실세의 독주가 있으면 전문 관료들의 열정도 기대하기 어렵다. 자긍심을 갖지 못한 관료가 국민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셋째, 온라인 소통이다. 지금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단절되어 있다. 오프라인이 전문가가 만드는 장이라면 온라인은 비전문가인 블로거들이 만드는 장이다. 온라인에서는 뉴욕대의 클레이 셔키 교수가 말한 소위 ‘대중의 아마추어화’ 현상이 지배하고 있다. 이는 온라인에 비전문적 의견으로의 집단화(grouping)와 쏠림(tipping)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역량 있는 민주주의는 고품질의 담론을 요구한다. 그런 담론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의 대중정치로 타락한다. 온라인의 담론이 우수해지지 않고는 오프라인의 담론도 우수해질 수 없다.

그러기에 정부가 오프라인에 안주하지 말고 온라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스스로 파워 블로거가 되어야 한다. 논쟁에 감정이 상해도 침묵보다는 나은 것이다. 그런 소통이 되어야 N세대들도 귀를 기울일 것이다. 천안함 사건에 관한 잘못된 정보가 인터넷을 뒤덮는다 하면서 그곳에서 끝장토론 한번 해낼 수 없다면 과연 소통을 한다 할 수 있겠는가.

유약겸하(柔弱謙下)라 했다. 부드럽고 겸손한 것이 결국 세상의 마음을 얻는 길이다. 새로 임명된 비서실장 내정자의 좌우명이 ‘남에게는 따뜻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한 것(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 하니 기대를 해본다. 그 좌우명을 잊지 말아야 이 난세에 소통과 화합을 이루고 원칙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홍규 KAIST 교수·경영과학

◆약력=서울대 정치학과, 미국 오리건주립대 경영학 석사, 한국외대 경영학 박사, 행정고시 18회,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조정실 국장, 한국정보사회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