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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용 진통제 없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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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통증이 심할 때도 진통 효과가 별로 없는 약을 한 움큼 먹어야 한다. 수지타산이 안 맞아 속효약(먹자마자 진통 효과를 내는 약)을 생산도 안한다니, 이게 말이 되나."

직장암이 재발해 국립암센터에 입원치료 중인 현상림(65·여)씨는 "제발 속효약이 나오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玄씨처럼 상당수 암환자들이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제약회사와 건강보험의 구조적 문제점 등 때문에 통증 완화 치료가 적절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실태=서울대 의대 혈액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는 10일 국립암센터가 주최한 '암치료 문화 정착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암환자 통증 관리의 실태 및 문제점을 발표했다.

許교수팀과 가톨릭의대 등이 대형 병원에 입원 중인 7천5백여명의 암환자를 대상으로 통증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2%가 지속적인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중 말기암이나 진행성 암(전이 또는 재발) 환자의 72%가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암환자 2백66명의 45% 가량이 통증을 참지 못해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증이 있는 환자 중 70%는 현재의 통증치료에 대해 만족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마약성 진통제 사용량은 선진국의 20% 선"이라고 추정했다.

◇문제점=許교수는 "마약성 속효 진통제가 알당 10~20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제약회사들이 생산을 기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말기암 환자에게는 진통제 사용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일부 진통제의 경우 건강보험 규정 상 사용한도가 너무 낮아 의료기관이 진료비를 삭감당하기 일쑤"라고 비판했다.

또 진통제 주사를 입원환자에게만 사용하도록 한 규정 때문에 환자들이 주사를 맞기 위해 계속 입원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통증 조절에 대한 의사들의 인식이 부족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실제로 통증을 호소하는 암환자 중 외래환자의 44%, 입원환자의 24%는 의사에게서 진통제 처방을 받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암센터 윤영호 과장은 "통증관리시스템 등을 국가 차원에서 구축하고, 속효성 진통제가 하루 빨리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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