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있는아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여름 아침의 시골은 가족과 같다

햇살을 모자같이 이고 앉은 사람들이 밭을 고르고

우리 집에도 어저께는 무씨를 뿌렸다

원활하게 굽은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나는 지금 간밤의 쓰디쓴 취각과 청각과

미각과 통각마저 잊어버리려고 한다

물을 뜨러 나온 아내의 얼굴은

어느 틈에 저렇게 검어졌는지 모르나

차차 시골동리 사람들의 얼굴을 닮아간다

-김수영(1921~68)'여름 아침' 중

여름 아침의 전원풍경이 농촌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밭머리 뽕나무 밑에 켜놓은 라디오가 날씨 이야기로 수다스럽겠지만, 이 검은 낯빛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햇살을 모자(帽子)같이 이고' 사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와선 태양의 화살도 끝이 뭉툭해질 것이다.

윤제림<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