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아침의 시골은 가족과 같다
햇살을 모자같이 이고 앉은 사람들이 밭을 고르고
우리 집에도 어저께는 무씨를 뿌렸다
원활하게 굽은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나는 지금 간밤의 쓰디쓴 취각과 청각과
미각과 통각마저 잊어버리려고 한다
물을 뜨러 나온 아내의 얼굴은
어느 틈에 저렇게 검어졌는지 모르나
차차 시골동리 사람들의 얼굴을 닮아간다
-김수영(1921~68)'여름 아침' 중
여름 아침의 전원풍경이 농촌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밭머리 뽕나무 밑에 켜놓은 라디오가 날씨 이야기로 수다스럽겠지만, 이 검은 낯빛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햇살을 모자(帽子)같이 이고' 사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와선 태양의 화살도 끝이 뭉툭해질 것이다.
윤제림<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