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틱스와 이지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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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스틱스(Styx)는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을 일곱 바퀴 돌아 흐르는 강의 여신을 말한다. 그렇지만 그녀는 단순한 여신 중 한 명이 아니라 올림포스의 신들이 두려워하는 맹세의 여신이었고, 이를 어겼을 때는 징벌을 받아야 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스틱스가 이렇게 막강한 권위를 갖게된 것은 올림포스의 신들이 티탄신족(神族)과 전쟁을 벌일 때 그녀가 제우스의 편을 들어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전쟁 후 제우스는 스틱스에 대한 은혜를 갚는다며 죽은 자는 모두 스틱스강을 건너야만 저승에 이를 수 있도록 했고, 신들에게도 맹세를 하거나 받을 때는 반드시 스틱스를 걸어 행하도록 했다. 만약 신들이 맹세를 지키지 않을 경우 1년 동안 식음(食飮)은 물론 숨도 못쉬게 하고 9년 동안 다른 신들과의 교제도 금지시켰다.

신화 속의 스틱스가 신화와 인간의 역사 중간에 등장한 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망과 관련해서다. 대왕의 죽음에 관해서는 독살설, 알콜 중독설 등 여러 이설(異說)이 있지만 지금의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원정의 말미에 아르카디아 지방에 도착한 알렉산드로스가 이곳에 있는 스틱스강(江)의 물을 마시고 중독사했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1959년은 이런 스틱스가 인간사에 완전하게 등장한 해다. 당시 소련은 유도탄정에 장착할 함대함 미사일을 개발했는데 그 이름이 스틱스였다. 원래 전쟁과 관련이 깊던 스틱스가 병기(兵器)로 재등장하면서 그녀의 명성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67년 제3차 중동전쟁 때엔 이집트 해군이 스틱스로 이스라엘의 구축함 에일라트를 격침시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런데 이런 스틱스가 2002년 6월 갑자기 한반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번 서해에서의 교전 때 북한이 스틱스 미사일의 레이더를 가동해 우리 초계함의 출동에 대비한 사실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스틱스 등 대함 미사일을 무력화시키는 최선의 방책은 대공방어체계와 전자전 능력을 강화한 이지스(Aegis)체계를 장착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지스는 제우스신이 딸 아테네에게 주었던 만능의 방패다. 미국이 동해에 이지스함 배치를 추진 중인 가운데 현재 동북아에서 이러한 방패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뿐이며 중국은 비슷한 시스템을 러시아에서 도입하기로 한 상태다.한반도 해역 주변에서 갑자기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우는 제우스의 여인들. 그녀들의 이름값이 높아지는 만큼 한반도 주변, 긴장의 파고도 높아지고 있다.

김석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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